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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 어쩌다 인간은 바이러스의 먹잇감이 되었나?

입력
2020.02.19 18:00
수정
2020.02.19 18:2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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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는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유럽에서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으러 병원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 게티이미지
유럽에서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으러 병원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 게티이미지

작년 12월 31일 중국 보건당국은 인구 1,100만명의 거대 도시 우한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집단 발병하였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했다. 발병의 근원지로 지목된 해산물 시장이 즉각 폐쇄되었고, 새로운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일주일 만에 보도되었다. 최근 두 달 사이 이 바이러스 폐렴은 수많은 사망자와 감염자를 양산시키며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 중이다. 2002년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휩쓸며 10% 가까운 치사율을 기록한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2015년 중동에서 유입돼 우리나라 전체를 공황상태로 몰고 갔던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의 악몽이 기억난다.

하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바이러스의 침략에 의한 재앙은 수없이 반복됐다. 대체 신종 바이러스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이렇게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일까.

천연두

두창, 마마로도 잘 알려진 천연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인류를 위협하던 대표적 바이러스 감염병이다.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듯이, 고대부터 인류는 천연두의 횡포에 고통받아 왔다. 고대 로마제국의 종말도 함께했고, 잉카의 멸망 과정에서도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는 맹위를 떨쳤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전국시대, 그리고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에도 천연두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는 문헌상 기록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도 천연두가 크게 유행하여 1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천연두의 기원은 기원전 1만년쯤,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농경시대로 추정되며, 이집트를 거쳐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설치류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축으로 사육되던 소와 사람에게 전파되어 치사율이 20~60%에 달했으며, 20세기에도 3억~5억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18세기 개발된 종두법 백신 사용으로 점차 줄어 1977년 마지막 감염 환자를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 천연두는 현재까지 인간이 박멸한 유일한 전염병이다.

홍역

천연두와 함께 대표적 바이러스 전염병인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고 합병증도 심하다. 오죽하면 심한 고생을 겪을 때 ‘홍역을 치르다’란 말까지 생겼을까. 4세기 중국 고서엔 홍역으로 의심되는 기록이 있고, 10세기쯤에는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Rhazes)가 천연두와 홍역을 구분하는 진단법을 기술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 번 감염되면 평생 자연 면역을 얻을 수 있어, 백신을 사용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전까지는 평생 한 번은 치러야 하는 질병이었다. 천연두와 마찬가지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메리카로 퍼지면서 이 병을 처음 접하게 된 원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하였는데, 1592년 쿠바에선 천연두로 살아남은 원주민의 3분의 2가 결국 홍역으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50년대 하와이에선 인구의 20%를 살육하기도 했다. 1855년에서 2005년 사이 약 150년간, 홍역은 전 세계적으로 약 2억명의 희생자들을 만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홍역은 천연두, 콜레라와 더불어 3대 전염병으로 꼽혔다. 현종 9년(1668년)에는 팔도에 홍역이 대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숙종 33년(1707년)에는 평안도에 발생한 홍역으로 사망자가 수천 명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쯤 소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사람으로 숙주를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홍역이 돌 때 자멸하지 않으려면 25만~50만명의 인구가 필요하다고 추정하고 있는데, 가장 큰 도시의 인구가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한 시기가 기원전 4세기 무렵이라는 역사가들의 추정과 일치한다. 천연두처럼 가축을 기르고 집단적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확산된 전염병인 것이다.

인플루엔자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2,400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기술에서 그 기원을 추정할 수 있으나, 증상이 다른 감염 질환과 유사하기 때문에 명확히 확인할 수는 없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1580년대 러시아에서 시작된 독감이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인데, 이후로도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산발적으로 계속됐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대유행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이다. ‘역사상 최대의 의학적 홀로코스트’로 묘사되었으며, 가장 혹독했던 세균성 전염병인 흑사병에 필적할 만한 감염으로 기록되고 있다. 2009년 대유행을 일으킨 신종 독감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스페인 독감이 세계 곳곳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던 1918년 당시 미국 캔자스주 임시병동에 수용된 독감 환자들. 위키피디아
스페인 독감이 세계 곳곳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던 1918년 당시 미국 캔자스주 임시병동에 수용된 독감 환자들. 위키피디아

코로나

오랜 역사를 가진 이들 세 가지 바이러스 전염병과 달리, 코로나바이러스는 새롭게 인류에게 도전하는 전염병이다. 이전부터 있었던 ‘사람 코로나바이러스’들은 약 800년에서 100년 전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들이 사람으로 숙주를 바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사람 코로나바이러스들은 단순한 감기를 유발하고 폐렴은 거의 일으키지 못한다. 하지만 2002~2003년 갑자기 나타난 사스와 2012년 중동에서 시작된 메르스는 급성 폐렴으로 인한 치사율이 각각 10%, 35% 달했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병(코로나19)도 일반적 독감의 치사율을 훌쩍 웃돌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공포의 강도가 더하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선 조사가 더 필요하겠지만, 다른 코로나처럼 박쥐에서 유래하여 천산갑이나 다른 야생동물을 거쳐 사람으로 숙주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전 바이러스들이 오랜 기간 진화 과정을 거쳐 야생동물에서 가축, 그리고 사람으로 전파되는 양상을 띠었다면 이제 코로나바이러스들은 야생동물들에서 바로 사람들로 넘어오는 경향을 보인다. 얼마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위협적 출혈열 유행을 일으켰던 에볼라 바이러스도 박쥐에서 유래하여 원숭이를 거쳐 사람을 숙주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주어진 숙제들

인류의 바이러스 수난사를 보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계에는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여러 동물을 숙주 삼아 존재한다. 인간들은 대도시를 짓고 번성하면서, 안정적 식량 공급을 위해 일부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만들어 대규모로 사육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가축들은 영역이 확대되고 밀도는 증가하는 반면, 야생동물들의 공간은 축소되고 다양성과 밀도는 점차 줄어든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는 야생동물 멸종을 가속화하고 그 결과, 야생동물들을 숙주로 삼던 다양한 바이러스는 자연 선택의 압력을 받아 자신들에게 접근하는 가축과 사람을 숙주로 삼을 수 있는 돌연변이의 수를 늘려 간다. 이 바이러스들에 집단생활을 하는 가축과 사람들은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전 세계를 이동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엔 영역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바이러스의 실체를 알지 못했던 20세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이들에 대항할 적절한 방안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자연적으로 갖고 있는 면역체계에 전적으로 의존하였으며, 자연 면역을 얻지 못한 대부분 인간은 무참하게 희생양이 되었다. 바이러스들의 유일한 목표는 그들의 유전자 복제를 통한 번식이기 때문에 자비와 관용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실체를 잘 알고 있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설령 아주 새로운 바이러스가 가축과 인류를 침범해도 수주 안에 그들의 정체(유전자)가 밝혀지고 전파 경로가 파악된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새 바이러스들의 출현을 예측할 것이고,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할 것이다. 인간을 숙주로 바꾸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시도는 결국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대응을 통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2차 피해를 양산하는 막연한 공포, 비과학적 소문과 음모론은 냉철한 이성으로 배척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의지를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는 바이러스들은 앞으로도 번식을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야생의 숙주들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가축과 인간들은 점점 매력적인 숙주가 될 것이고, 새로운 바이러스들의 침입은 빈번해 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젠 인간의 욕심이 유발한 야생 바이러스들의 침입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욕심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이, 자연의 ‘임계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그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자연 선택의 심판은 단순하고 효율적인 유전자 복제 기계, 즉 바이러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조남혁 서울대의대 교수

조남혁 교수는 서울의대 미생물학교실 소속으로 최근 증가하고 있는 진드기 매개 감염질환과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 및 백신개발 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2년엔 기초의학 및 생명과학분야 우수과학자에게 수여되는 한탄상,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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