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DMZ두루미평화타운 앞 한탄강변. ‘겨울 진객’ 두루미 500여 마리가 설경 속에서 환상적인 군무를 펼치자 탐조객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이 때 안타까운 장면이 몇몇 탐조객에 의해 포착됐다. 무리 속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재두루미를 발견한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올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탐조객들은 당장 구조해서 치료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부상을 입은 두루미를 당장 구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현장 근무 중이던 철원군 관계자에 따르면 무리 지어 주변을 항상 경계하는 두루미의 습성상 구조 자체가 쉽지 않다.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치료를 받지 못한 두루미는 결국 상처 부위 감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두루미는 다리에 비해 몸집이 큰 탓에 이동 과정에서 돌부리나 나뭇가지 등에 다리가 걸리면 쉽게 부러진다. 자연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인간이 설치한 전깃줄이나 각종 인공 구조물에 의해 골절상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몰지각한 사진작가들도 문제라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남보다 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지정된 촬영 장소를 벗어나 근접 촬영을 시도하고, 비상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갑자기 소음을 내며 쫓을 경우 놀란 두루미가 이륙하면서 다리가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를 찾은 두루미 개체 수가 크게 늘었다. 전국 철새도래지에 두루미 1,500여 마리가 날아왔고 재두루미는 4,500마리나 발견됐다. 두루미를 진정 ‘귀한 손님(진객)’이라고 여긴다면 겨우내 안전하게 머물다 돌아갈 수 있도록 보호책 마련, 탐조 매너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