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의 ‘초록들’ 2020년작.

부드러운 곡선과 달리 직선은 늘 현대 문명적인 그 무엇을 상징한다. 단적인 예로 아프리카 국경선이 꼽힌다. 제국주의 열강이 임의로 지도 위에다 쭉 그은 선들. 그런 국경선은 그 땅 위의 사람, 역사 등 이 모든 것을 무시하겠다는 욕망과 통제의 선언으로 읽혔다.

이정배 작가의 관심사는 ‘인공 자연’이었다. 저 위험한 ‘자연’을 보다 안전한 ‘인공’으로 바꾸겠다는 인공 자연은 그 자체가 기묘한 형용모순이다. 이 모순에 흥미를 느낀 작가는 인공 자연을 다루면서 직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차용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깔끔하게 조각난 산” “반듯하게 구획된 도심 속 공원” 같은 것이 주된 작업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우디아라비아 풍경을 보고 충격 받았다.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다 찍은 사진들이었는데 “그 곳의 밭들은 깔끔한 원형 형태, 놀라운 기하학적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밭의 중심에 스프링클러가 있고, 여기서 나오는 물이 어디까지 닿느냐에 따라 밭의 범위와 모양이 결정된다.

꼭지점을 찍은 컴퍼스가 오차 없는 원을 그리듯, 관개농업이라는 인공적 개입은 깔끔한 원형의 밭을 만들어 낸다. 멀리 갈 것 없다. 사람 친화적 도시라는 명분으로 보행로로 탈바꿈한 서울로7017 위엔 동그란 콘크리트 화분들이 쭉 늘어서 있다. 형태는 둥글고 그 안엔 식물이 자라지만, 어느 누구도 그걸 자연이라 부를 사람은 없다.

작가가 참고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앙 회전식 원형 관개농업 사진. 피비갤러리 제공.

동그란 초록색들이 늘어서 있는 이정배의 ‘초록들’은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다. “곡선 또한 통제의 상징일 수 있음”을 깨달은 이 작가는 둥그런 원형을 두고 “원이라기보다는 둥근 직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연못가에 둥둥 떠다니는, 귀여운 개구리밥처럼 보이지만 품고 있는 뜻은 날카로운 셈이다. 이 작가는 “비판 의식을 담았지만 그 안에서도 ‘미’를 완전히 놓을 수 없다는 점이 예술가로서 앞으로도 늘 가지고 갈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이은선, Core, 2020

이 작품은 다음달 21일까지 서울 삼청동 피비갤러리에서 열리는 ‘피비_링크(PIBI_LINK)’전에 나왔다. ‘관계성’에 주목한 이은성 작가의 ‘코어(Core)’ 등 김영준, 김희영, 안경수, 이교준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정원 인턴기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