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전쟁’에서 LG화학이 먼저 웃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ITC 측에서 최종패소 판결을 내리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 대한 2자전지 관련 사업을 중단하고, 수조원대 손실까지 전망된다.
LG화학은 ITC가 14일(현지시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ITC는 LG화학 측이 요청한 조기패소 판결을 승인하는 ‘예비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결정의 구체적인 근거는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또 3월 초로 예정된 ‘변론’ 등의 절차 없이 10월 5일까지 ITC의 최종결정만 남게 됐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한 직후인 지난해 4월29일 이메일을 통해 소송 증거자료 삭제를 지시하고, 지난해 4월 8일 LG화학이 내용증명 경고공문을 보낸 직후에도 3만4,000개 파일, 메일에 대한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ITC 명령에도 불구하고 포렌식을 해야 할 75개 엑셀시트 중 1개만 진행한 데 이어 나머지 74개 엑셀시트는 자체 포렌식을 진행한 정황 등도 드러났다.
이에 LG화학은 지난해 11월 5일 ITC에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했다며 조기패소 판결을 요청한 바 있다. ITC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은 같은 달 15일 LG화학의 요청에 찬성하는 취지의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OUII는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훼손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며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이런 행위들 중 일부는 고의성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이번 판결은 ITC가 소송 전후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에 의한 악의적이고 광범위한 증거 훼손과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모독 행위 등에 대해 법적 제재를 내린 것”이라며 “추가적인 사실 심리나 증거조사를 하지 않고 LG화학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LG화학은 “조기패소 판결이 내려질 정도로 공정한 소송을 방해한 SK이노베이션의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법적 제재로 당사의 주장이 그대로 인정된 만큼 남아 있는 소송절차에 끝까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최종 판결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1996년부터 2019년까지 ITC 통계에 따르면 영업비밀 관련 소송의 경우 ITC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이(조기패소결정 포함) ITC위원회의 최종결정으로 그대로 유지됐다. 특허소송의 경우에도 90% 정도의 비율로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ITC가 최종결정을 내리면 LG화학의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ㆍ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현재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에 짓고 있는 전기차 16만대 분량인 9.8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의 가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면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된다.
한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특허침해를 두고 미국에서 맞소송을 진행 중이다. 또 한국에서도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영업비밀침해에 대한 형사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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