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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설계한 집을 중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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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설계한 집을 중개합니다

입력
2020.02.17 04:30
수정
2020.02.17 10:0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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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건축 전문 중개업자 전명희 ‘홈쑈핑’ 대표

최근 서울 중림동 ‘홈쑈핑’ 사무실에서 만난 전명희(36) 대표가 “굳이 집을 짓지 않아도 남다른 집에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홈쑈핑 제공
최근 서울 중림동 ‘홈쑈핑’ 사무실에서 만난 전명희(36) 대표가 “굳이 집을 짓지 않아도 남다른 집에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홈쑈핑 제공

“밤하늘이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나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요.”

“가끔은 현관문 앞에 의자를 내어 놓고 따뜻한 햇살 아래서 책을 읽는 여유를 가져보세요.”

여행 광고가 아니다. 부동산 가게가 홈페이지에 올린 매물 소개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홈쑈핑’의 홈페이지는 여느 부동산과 다르다. ‘풀옵션 신축 원룸, 보증금 3,000만원/월세 30만원’ 같은 문구는 찾기 어렵다. 크기와 가격 뒤에 가려졌던 외부공간 조명 풍경 채광 환기는 물론, 그 공간만이 가진 정서까지 설명한다. 집에 들어가는 골목길은 어떤지, 창밖 풍경을 보며 드는 생각, 집에 들어섰을 때 느낌, 식물 키우기에 좋은지,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면 좋을 만한 것들 등을 설명한다.

지난 13일 서울 중림동 ‘홈쑈핑’ 사무실에서 만난 전명희(36) 대표의 출발점은 건축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뒤 도시재생 관련 일을 하다 건축가가 지은 집이나 건축적 가치가 높은 집을 중개하는 일본의 ‘R부동산’을 알게 됐다. ‘홈쑈핑’은 말하자면 ‘한국판 R부동산’이다. 전 대표는 “기존 부동산들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나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명희 ‘홈쑈핑’ 대표가 직접 찍은 서울 전농동의 ‘유일 주택’ 현관문 앞 풍경. 그 집의 건축 의도를 살려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홈쑈핑 제공
전명희 ‘홈쑈핑’ 대표가 직접 찍은 서울 전농동의 ‘유일 주택’ 현관문 앞 풍경. 그 집의 건축 의도를 살려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홈쑈핑 제공

그러다 보니 전 대표가 중개하는 집은 대개 건축가가 지은 집이다. 전 대표는 “아무래도 다양한 공간을 보여 주려면 출발은 건축가가 지은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수익보다 살아가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설비부터 공간 활용까지 여느 집들과 다르다”고 말했다.

가령, 그가 중개한 서울 전농동의 ‘유일주택’은 에이라운드 건축사사무소와 마인드맵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다세대 주택이다. 계단과 복도 같은 공용공간을 쾌적하게 만들어 원룸에 사는 이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없앴다. 서가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서울 봉천동의 다세대 주택 ‘화운원’ 또한 발코니 등 원룸에서는 찾기 어려운 공간이 있어 요리, 가드닝 같은 취미를 지닌 1인 가구가 선호한다.

전명희 대표가 소개한 서울 봉천동의 ‘화운원’. 전 대표는 발코니에서 자신만의 비밀 화원 가꾸기를 추천했다. 홈쑈핑 제공
전명희 대표가 소개한 서울 봉천동의 ‘화운원’. 전 대표는 발코니에서 자신만의 비밀 화원 가꾸기를 추천했다. 홈쑈핑 제공

이런 소개 방식에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아무래도 20~30대 1인 가구들이다. 전 대표는 “대부분 이런 집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월세를 조금 더 내더라도 자신의 취향에 더 맞아서 좋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실제 그가 소개한 집의 월세는 주변 시세에 비해 5만~10만원 정도 비싸다.

하지만 계약이 성사되는 비율은 50%가 넘는다. 제대로 된 집을 공들여 설명해 둔 덕에 일단 한번 둘러보면 계약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전 대표는 “집에서 아주 특징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찍어서 올리기 때문에 남다른 집을 애타게 찾던 사람들은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울 고덕동의 ‘청아재’는 주변 집들보다 층이 높아 넓은 시야를 준다. 홈쑈핑 제공
서울 고덕동의 ‘청아재’는 주변 집들보다 층이 높아 넓은 시야를 준다. 홈쑈핑 제공

계약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부분도 있다. 가격 등이 맞으면 금세 결정되는 다른 집들과 달리, 이런 집들은 어느 정도 집에 대한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건축가와 집주인을 설득해 계약을 맺고, 세 들어갈 집을 찾는 이들에겐 설문조사까지 해서 집을 찾아 준다. 전 대표는 “좀 더 인간적인 환경을 만들고, 또 찾으려는 이들을 매칭하는 게 포인트”라고 했다.

‘홈쑈핑’은 아직 적자다. 하지만 전 대표의 목표는 수익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건축가의 집도, 그런 집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어요. 서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죠. 저를 통해 공간에 대한 감각의 지평이 조금이나마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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