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처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속내가 크루즈선 입항 허가 여부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베트남은 입항을 전면 거부하고 태국은 선별적으로 허용한다. 캄보디아는 아예 크루즈선들의 희망을 자처하며 ‘우리에게 오라’는 식이다. 저마다 나름의 사정과 이유는 있다.
14일 동남아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베트남은 국적 및 동선에 관계없이 모든 크루즈선의 입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앞서 13일 베트남 정부는 ‘아이다비타’호의 입항을 최종 거절했다. 베트남 할롱베이 인근 할롱항 정박을 원한 아이다비타호는 독일 선사 ‘아이다 크루즈’ 소유의 선박이다. 이 배는 중국 등 신종 코로나 창궐지에 들르지 않았고, 승선한 승객 1,100명과 승무원 400명 대부분도 독일인이었다. 바이러스 감염자나 의심환자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뜻이다. dpa통신은 “아이다 크루즈 측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입항 거부의 정확한 이유를 듣지 못했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우려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캄보디아는 일본 등 5개국의 거절로 바다를 떠돌던 ‘웨스테르담’호의 입항을 전격 허용했다. 훈센 총리는 이날 웨스테르담호가 도착한 시아누크빌항까지 직접 마중 나가 꽃다발을 건네며 승객들을 환영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캄보디아가 웨스테르담호를 정박시키지 않았다면 이 배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라고 강조했다. 또 “캄보디아는 가난한 나라지만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항상 국제사회에 동참해 왔다”고 한껏 자부심을 드러냈다.
정반대인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크루즈선 대응 방식은 중국과의 친밀도에 따라 결정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로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경제 자생력이 높아진 베트남은 사태 초기부터 중국과 확실히 선을 그었다. 동남아에서 가장 먼저 중국발 비행기 운항을 금지했고, 전날엔 중국 외 나라 중 처음으로 자국 농촌마을을 봉쇄하는 강경책을 썼다. 구호 물자를 보내는 등 최소한의 우호 관계는 유지하되, 굳이 중국 눈치를 보며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반면, 캄보디아는 신종 코로나 발병 이후 유일하게 훈센 총리가 직접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그는 심지어 바이러스의 지원지인 우한까지 가겠다고 우겨 중국 당국이 오히려 애를 먹어야 했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받고, 카지노 사업 등에도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어서 심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처지다. 크루즈선 입항 결정 역시 중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 “겁 먹지 마라. 사태는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대신 보낸 성격이 짙다.
태국은 일관성 없는 입항 허가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태국 정부는 전날 베트남이 아이다비타호 입항을 불허한 것과 달리 인기 관광지 푸껫으로 향하던 ‘시본 오베이션’과 ‘퀀텀 오브 더 시즈’호의 입항을 받아 들였다. 불과 보름 전인 1일 “신종 코로나 감염 여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며 태국 바다 밖으로 웨스테르담호를 몰아낸 것과 전혀 다른 행보다. 아누띤 찬위라꾼 태국 부총리는 “웨스테르담호에는 홍콩 및 중국 본토인들이 타고 있었고, 두 크루즈선 승객 대부분은 유럽인들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오락가락 결정을 비난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태국 시민들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푸껫으로 가는 크루즈선과 웨스테르담의 입항 기준이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항의 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도 “태국인들이 정부의 크루즈선 입항 허용 방침에 분노를 드러냈으며 태국 내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 정부의 돌연한 입장 변경은 관광산업의 미래와 관련이 깊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태국 관광 관련 부처들은 전날 긴급 회의를 거쳐 금명간 크루즈선 전용 항구 개발을 추진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신종 코로나로 외국인 관광객수가 이번 달 들어 43.4% 감소하고, 올해 경제성장률도 급감할 것이라는 태국중앙은행의 경고가 나오자 정책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태국은 나아가 신종 코로나 사태 해결 이후 중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혜택을 주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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