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농업은 4차 산업혁명의 기회를 농업 도약의 디딤돌로 활용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농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규모와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그야말로 환골탈태(換骨奪胎)될 것으로 예상한다. 첨단 기술이 농업에 결합되며 생겨날 변화는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농기계와 장비 자동화의 가속이다. 둘째, 질병 발생에 대한 정확한 솔루션 제공이다. 셋째, 시장 변화 및 소비자의 성향 분석이다. 농업은 점점 스스로 생각하고 생산 가능한 형태로 진화되고 있다. 해외 농업 강국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각종 첨단기술을 농업에 본격적으로 도입해 왔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세계 농업화에 뒤처진다면, 머지않아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를 볼지도 모르겠다.
온실을 운영하는 A농가는 생산성 저하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2025년부터 유럽의 B社가 제공하는 맞춤형 재배정보를 이용한 결과, 최적화된 온실 관리로 20%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햇빛, 온도, 질병 예방은 물론, 작업환경의 안전성과 소비자의 계절별 성향까지 인공지능, 빅데이터에 의해 분석된 재배정보를 이용한 결과이다. “B社에 평당 비용을 내지만, 덕분에 수익은 15% 늘었습니다. 이제는 이거 없이는 농사 못 지을 것 같아요….” 다만 B社가 매년 데이터 이용료를 올리고 있어 이것이 새로운 부담이라고 한다…. (중략)
이처럼, 농업에 첨단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는 모습은 전쟁 무기가 활에서 총으로 바뀌는 것과 같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과거에는 좋은 영농 기술과 재배 장비, 보다 넓은 재배면적을 가지고 있는 쪽이 농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전통적인 기술과 장비보다, 어떤 재배 데이터와 인공지능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가 농업 경쟁력의 관건이 될 것이다.
혹자는 소농(小農)의 높은 비중이 한국농업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진짜 문제는 작은 규모가 아니라, 소농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미국, 네덜란드 등 대규모 농가를 대상으로 하는 선진국의 ‘선택과 집중’형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소규모 농가가 많은 한국 농업에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여건에 적합한 한국형 모델, 즉 작지만 강한 ‘디지털 강소농(强小農)’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행히 희망적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벤처 농업기업 ‘엔씽’은 컨테이너에 조성한 스마트농장으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에서 최고혁신상을 받는 쾌거를 거두었다. 또한,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이 주최한 ‘2019 세계 농업 인공지능대회’에서 한국의 ‘디지로그 팀’은 당당히 2위로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하였다. 이는 한국이 디지털 농업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지표이다.
한국 농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먼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중점을 둔 농업 분야의 연구·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전후방 농업 관련 산업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민간 주체가 많이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소규모 농가의 디지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농가 전체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농업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급변하는 세계 농업의 추세를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 디지털 농업을 희망하는 농가를 중심으로, 관련 기술과 교육 등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농업, 미래의 눈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와 혁신, 그리고 대담한 상상이다. 모든 위대한 일들은 새로운 상상과 혁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ㆍ전 농림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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