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한강에서 털모자를 쓰고 얼음낚시를 하고, 썰매를 타던 모습은 과거 우리 겨울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강원도의 겨울축제에나 가야 느낄 수 있는 추억이다.
따뜻해진 날씨로 늦게 시작되었던 겨울축제들도 이제 끝나 가고 있다. 지방이 소멸해 가는 시대에 겨울축제들은 지역경제에 큰 기여를 해 왔다. 화천의 산천어 축제는 겨울축제의 성공모델이다. 인구가 3만이 안 되는 지역에 작년 축제기간 방문자가 180만명에 달했다.
화천 겨울축제의 두 가지의 키워드는 얼음나라와 산천어이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은 주제를 잘 조합했다. 얼음낚시는 온난화로 사라져 가는 겨울을 추억하기에 더없이 좋은 미끼이다. 산천어는 깨끗한 환경을 연상시킨다. 수질이 좋은 물에만 산다고 알려져 있어 물 맑고 환경 좋은 지역이라는 인상을 준다.
급속히 성장해 왔던 겨울축제가 중요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성공적인 겨울축제를 이끌었던 기후변화와 환경이라는 주제가 이번에는 거꾸로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먼저 산천어축제에 제기된 동물학대 논란이다. 그동안에도 동물권 단체들의 항의가 있긴 했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최근 유명 인사들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은 “오늘 같은 시대에 여전히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착취하고 고문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당연시 된다는 것은 놀랍고 소름끼치는 일”이라며 “화천 산천어 축제에 대해 알게 되어 슬프다”고 말했다. 환경부 장관은 개인입장이라고는 했지만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 중심의 향연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연히 축제성공에 노심초사하던 지자체와 주민들은 반발했다.
이외수 작가의 말처럼 따뜻한 겨울에 신종코로나까지 겹쳐서 걱정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는 아픈 상처에 왕소금을 뿌려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겨울축제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귀담아들어야 할 지적임은 분명하다. 지역인구의 40배가 넘는 사람들이 다녀갈 정도로 성공한 축제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생명과 평화, 환경과 공존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고 확대해 가야 한다.
겨울축제의 위기는 동물권 단체들과 환경단체들의 항의에 있지 않다. 이들의 지적이 축제를 그만 두라는 것이 아닌 이상 축제의 프로그램 속에 충분히 담아 가면 될 것이다. 겨울축제의 실제 위기는 따뜻해져 가는 겨울에 있다. 심각해져 가는 온난화는 그나마 얼음나라를 느낄 수 있었던 강원도의 겨울마저 녹여 버리고 있다. 한강에서 더 이상 얼음을 볼 수 없게 되었듯 화천강에서도 얼어 있는 강을 볼 수 있는 날들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최근의 겨울날씨를 보면 기온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겨울비도 늘어가는 추세이다. 겨울에 늘어 나는 비는 봄가뭄 해갈을 위해서는 좋지만, 겨울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올 겨울 기온이 평년에 비해 2도가량 높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얼음이 얼지 않아 축제가 연기되었다. 여기에 많은 비까지 내리면서, 얼음 낚시터와 눈썰매장 등이 녹아 내렸다. 화천뿐만 아니라 겨울축제를 준비했던 지역들이 대부분 혼란에 빠졌다.
겨울축제를 3주간이나 연기하게 했던 겨울날씨의 변덕은 올해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갈수록 빈번해지고 심각해질 것이다. 항상 따뜻하기만 하면 그나마 대비가 쉬울 텐데 대기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어떤 해는 가을 같은 겨울이 왔다가 또 다른 해에는 시베리아 추위가 몰려올 수도 있다.
기후위기는 한 지역이나 국가의 노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30년 뒤에도 겨울축제를 볼 수 있으려면 기후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에 당장 나서야 한다.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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