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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시대에도 대중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습만 바뀔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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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시대에도 대중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습만 바뀔 뿐

입력
2020.02.14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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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내려진 2017년 3월 1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2016~2017년 촛불집회는 ‘개별 대중’의 집합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내려진 2017년 3월 1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2016~2017년 촛불집회는 ‘개별 대중’의 집합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달라지려면 같아져야 하는 아이러니. “개인주의의 시대에도 대중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습이 바뀔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통찰이다. 오늘날 개인들은 자신의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동질적인 집단, 즉 대중을 활용한다. “대중은 각자가 따로인 개인들로 존재하지만, 개개인을 감추는 게 아니라 보이게 해준다.”

시간이 갈수록 대중의 구심력은 되레 커진다. 동일한 문화적 관심과 사회적 취향을 통해 개개인이 뭉치려 하는 건 원심력을 견디기 위해서다. “사회가 이질적일수록 그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 집단들은 더욱 더 동질적”이라고 저자들은 간파한다. 낯선 세상에서 고립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개인이 소속 집단을 찾게 만든다.

“복수화는 사회의 분열을 초래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새로운 종류의 결속체를 불러온다.” ‘개별 대중’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건 그런 배경에서다. 컬트 대중, 팬 대중, 시위 대중, 축제 대중 등 저자들은 앞에 수식어를 달아 대중을 복수화한다.

개별 대중의 출현을 부추긴 건 인터넷이다. 전통적 대중의 조밀함과 위계 질서 대신 느슨하고 개방적인 결속이 대중의 특성이 되도록 만든 게 이 새로운 네트워크였다. “기계들의 연결은 실제로 만날 필요 없이 신호에 의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해준다.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된 사람들은 가상의 대중을 형성한다.” 이때 ‘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 대중과 가상 대중은 서로 강화해주는 관계다. “내가 어느 편에 가담하는지는 내가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는지에서 알아볼 수 있다.”

개별 대중 시대에 ‘대중의 바깥’은 없다. 뉴미디어 덕에 더 이상 관찰자와 행위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실시간 전송되는 휴대폰 영상은 모두를 사건 내부자로 만든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가상으로만 대중에 포함돼 있다 해도 대중 속에서 밖을 바라본다.” 자기 행동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면, 행위자는 관찰자로 변신한다.

방탄소년단(BTS)이 세계적 스타로 도약하는 데 기여한 이들은 '개별 대중'이었다. BTS 팬 '아미'가 지난해 6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의 월드투어 공연에 입장하기 전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방탄소년단(BTS)이 세계적 스타로 도약하는 데 기여한 이들은 '개별 대중'이었다. BTS 팬 '아미'가 지난해 6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의 월드투어 공연에 입장하기 전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중의 일원이 되는 일은 이제 선택하고 말고 할 게 아니다. “개인은 대중 속에서 행동, 목표, 힘든 노력의 공통성을 통해 행동의 의미와 존재의 느낌을 얻는다.” 그건 1950, 60년대 대중이 구성원들에게 가했던 순응 압박과 다른 압박이다. 수많은 대중들 중 어느 편이 자기에 맞는다고 느끼는지 결정하라는 압력이다. “경합을 벌이는 유사한 대중들이 존재하면 각 대중은 자신의 유일성을 상시적으로 내보이지 않을 수 없다.” 순응하지 않으려면 똑같은 차림으로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자신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대중의 일원임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대중과 거리가 생긴다.

저자들에 따르면 “문화와 정치, 팝과 스포츠, 소비 분야 곳곳에 퍼져 있는 새로운 대중은 파괴를 일삼는 대중과 분노하는 폭도가 아니라, 항의하고 열광하고 즐기는 대중이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난민과 외국인 등을 무차별 반대하고 혐오하는, 이른바 ‘포퓰리즘적 대중’이 자취를 감춘 건 아니다.

저자들이 내놓는 해법은 ‘축제 대중’이다. “자기애에 빠진 대중, 오직 쾌락에 도취돼 자신만을 위해 모이는 대중”이 축제 대중인데 그들은 증오에 휩쓸리지 않는 데다, 외부의 적이 전혀 없어 일치단결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가령 우연히 마주칠 때 눈길을 주거나, 몇 마디 말을 하거나, 위급한 경우에 배려를 해주고 도움을 주거나, 비행기나 기차가 연착할 때 함께 욕설을 하는 것으로 우리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단초를 보여준 사례 중 하나가 2016, 17년 한국의 촛불집회다. 촛불의 비폭력은 시위 광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시위 대중의 온건성과 동질성이 역동성을 줄이고 배제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미리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은 한국민주주의연구소 발간 계간지 ‘기억과 전망’ 2019년 겨울호에서 “예컨대 노동자ㆍ농민의 생존을 건 투쟁의 목소리가 침묵 당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대중의 탄생 

 군터 게바우어ㆍ스벤 뤼커 지음ㆍ염정용 옮김 

 21세기북스ㆍ384쪽ㆍ1만8,000원 

책의 부제는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다. 대중 실체의 변화 추이를 면밀히 추적하고 개념과 유형을 입체적으로 살폈다. 원저는 독일에서 지난해 출간됐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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