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 “수사정보 비밀 아니다”공모사실도 인정 안 해… 양승태ㆍ임종헌 재판 영향 주목
구속영장 내용을 유출해 이른바 ‘사법농단’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온 현직 판사 3명이 1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이어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가 나오면서, 검찰은 사법농단 관련자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연속 실패했다. 사법농단 의혹 핵심 인물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유영근)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ㆍ조의연ㆍ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신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재직시 영장전담판사들을 통해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 정보를 수집해 행정처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두 부장판사들은 영장전담판사로서 신 부장판사 지시로 영장청구서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법원은 일단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는 정보 자체가 기밀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수사정보가 실질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수사와 재판에 방해를 초래한 결과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법행정 차원에서 (영장에 나타난) 법관의 비위 관련 내용을 행정처에 보고했을 뿐”이라며 이들의 행위가 직무 범위 안에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들이 범죄를 공모했다는 검찰 주장도 물리쳤다. 검찰은 애초 사법부를 겨냥한 수사를 막기 위해 대법원 법원행정처 지시를 받아 조직적으로 수사 기밀을 알아내 빼돌렸다고 보아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조직적 공모가 있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행정처에서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방안을 마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의 판단은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 부장판사 등의 행위가 직무 범위 내에 있었다는 판단에 따라, 두 전직 법관의 공소사실 중 같은 사건에 적용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는 무죄를 다툴 수 있다. 설사 이들이 직권을 남용했다고 하더라도 신 부장판사 등이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최근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실무자의 행위가 법령이나 규정 내에 있는 것이라면 처벌하기 어렵다’는 판단기준을 세웠다.
이날 선고는 사법농단 의혹에서 법원이 현직 판사의 혐의에 대해 내린 첫 번째 판단이다. 무죄를 받은 부장판사들은 검찰 기소 후 재판업무에서 배제돼, 사법연구 업무를 맡고 있다. 앞서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관련 소송 내용을 청와대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유 전 수석재판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아직까지 사법농단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 유죄를 받은 전ㆍ현직 법관은 없었다.
성 부장판사 측은 재판이 끝난 후 “사실관계로 보나 법리적으로 보나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수사 기밀을 법원행정처에 누설하고, 행정처는 영장재판 가이드라인 및 수사 확대 저지 방안을 시행하는 등 재판 기능에 중대한 위험을 야기한 사건”이라며 “사실 관계가 모두 확인됐는데도 무죄를 선고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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