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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스터디] ‘퍼스트 젠틀맨?’…세상을 움직인 성 소수자들

입력
2020.02.14 08:00
수정
2020.02.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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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경선 후보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내슈아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미소 짓고 있다. 내슈아=AP 뉴시스
미국 민주당 경선 후보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내슈아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미소 짓고 있다. 내슈아=AP 뉴시스

“바라건대 만일 내가 암살당하면 내 머리를 뚫은 총알로 모든 닫힌 벽장문을 부숴주길.”

1977년 미국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선출직 공무원으로 당선된 인물이죠. 하비 밀크 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 사망 9일 전 자신이 암살당하면 공개하라는 단서를 달고 녹음한 유서의 일부입니다. 실제 그는 당선 후 1년도 되지 않아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불만을 품은 동료 시의원 댄 화이트에게 조지 모스코니 당시 시장과 함께 살해당했지만, 그 총알은 수많은 ‘클로짓 게이(성 소수자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숨어 지내는 사람)’들을 벽장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비 밀크의 시간으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작된 민주당 경선에서 30대 동성애자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입니다. 3일(현지시간)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1.3%포인트(p)의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죠. ‘돌풍’이라 할 만합니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유력 주자인 피트 부티지지(왼쪽) 전 인디애나 사우스벤드 시장이 10일(현지시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전 마지막 유세에서 남편 채스턴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엑서터=AP 뉴시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유력 주자인 피트 부티지지(왼쪽) 전 인디애나 사우스벤드 시장이 10일(현지시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전 마지막 유세에서 남편 채스턴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엑서터=AP 뉴시스

상상해 봤어? 미국 최초 ‘성 소수자 대통령’과 ‘퍼스트 젠틀맨’

중도 성향의 고학력ㆍ부유층 백인 유권자들을 핵심 지지층으로 갖고 있는 부티지지는 보수적 성향의 중ㆍ남부 주에서 득표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동성애자라는 것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지난해 6월 교사인 남편 채스턴 글래즈먼과 동성결혼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죠. 이미 그는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라는 점에서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요. 만약 당선된다면 미국 최초의 ‘성 소수자 대통령’과 ‘퍼스트 젠틀맨’이 동시에 탄생하게 될 겁니다.

미국에서 동성애 성향을 커밍아웃하고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은 과거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는데요. 최근까지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부티지지에게 투표한 한 중년 여성 당원이 집계를 돕는 자원봉사자에게 “동성애자인 줄 몰랐으니 내 표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소동이 일었고, 이를 촬영한 영상이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아직 미국 사회에 남아있는 장벽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부티지지의 기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과 시대적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요.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대통령이라는 상상, 이는 부티지지가 나타나기 전 또는 밀크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전부터 각 분야에서 사회적 차별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성 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인정을 요구하며 현실의 영역으로 조금씩 당겨온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동성애자였던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왼쪽)와 영국의 암호학자 앨런 튜링. 한국일보 자료사진
동성애자였던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왼쪽)와 영국의 암호학자 앨런 튜링. 한국일보 자료사진

범죄 취급에 거세ㆍ치료까지 ‘수난’…그럼에도 길을 연 사람들

기원전부터 세상을 뒤흔든 성 소수자들은 많았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대중들에게 밝히고 인식을 바꾸는데 앞장서온 인물들이 나타난 시점을 떠올려보면 기껏해야 200~300년 전부터입니다. 그만큼 금기시했다는 뜻이겠죠. 영미권과 유럽권에서도 동성애 형사처벌을 폐지하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수십 년 전으로, 길고 긴 박해의 역사에 비해선 턱없이 짧습니다. 한국 역시 ‘동성애 처벌법’으로 불리는 군 형법 제92조의 6 조항을 두고 끊임없이 잡음이 일고 있죠.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시인ㆍ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1895년 당시 금지된 동성애를 했다는 죄로 법정 최고형인 징역 2년 중노동형에 처했는데요. 재판정에서 플라톤,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등을 인용해 동성애를 항변하고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며 큰 성공을 거둔 작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대중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와일드는 파리로 망명해 비극적인 마지막을 보내게 됩니다. 현대에 와서 그의 재판은 문화사적으로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중대 사건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가부장제와 성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는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의 선구자라 평가 받는데요. 레즈비언 태동기를 이끈 인물로도 유명하죠. 지금보다 엄격했던 사회적 시선에도 본인의 성향을 숨기지 않고 여성운동을 벌였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 역시 동성애자로서 당시 1920년대 초 동성애를 옹호해 대중들에게 크게 비난을 받았죠. 그럼에도 그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소설 ‘코리동’을 자신의 저작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언급했습니다.

20세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요.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인 앨런 튜링은 1952년 동성애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결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그는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와 호르몬 치료를 받았고 발기부전, 여유증, 중추신경계 손상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되죠. 이를 견디던 그는 결국 2년 뒤 시안화 칼륨을 치사량 넘게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고 숨을 거두는데요. “사회가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의 죽음을 택한다”라는 유언을 남겨 동시대에 일침을 던졌습니다.

동성애자라 커밍아웃 한 ‘애플’ CEO 팀 쿡(왼쪽)과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 산호세=AFP 연합뉴스 및 한국일보 자료사진
동성애자라 커밍아웃 한 ‘애플’ CEO 팀 쿡(왼쪽)과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 산호세=AFP 연합뉴스 및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 분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커밍아웃 “힘 실어주고 싶다”

이렇듯 길을 여는 이들로 인해 비록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근엔 비교적 커밍아웃을 하는 유명인들이 많아졌습니다. 저서 ‘감시와 처벌’ 등으로 유명한 인문사회과학 분야 석학인 프랑스의 미셸 푸코는 동성애자로서 소수자를 억압하는 근대의 질서에 대해 비판했죠.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내재한 작품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음악 분야에서는 록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고 이를 노래하며 무대를 누볐고, 영국의 팝 거장 엘튼 존은 에이즈 재단을 설립하고 21년간 관계를 이어온 연인과 동성결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수 리키마틴은 유엔(UN) 연설에서 커밍아웃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었죠.

이외에도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동성애는 신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며 미국 대기업 CEO로서는 처음으로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혔는데요. “애플 CEO가 동성애자라고 공개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며 고독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유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NBA 선수로서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존 아미치, ‘피겨여왕’ 김연아의 코치였던 브라이언 오서, 미국 피겨 스타 브라이언 보이타노 등 스포츠 분야에서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당당히 밝히고 활동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샤넬의 전설’ 칼 라거펠트를 비롯해 지아니 베르사체,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 마크 제이콥스, 입생로랑, 알렉산더 맥퀸 등 내로라하는 동성애 성향의 디자이너들 역시 성 소수자로서 위축되기보다는 독특한 감각을 발휘해 사랑을 받았죠.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큰 이안 맥켈런, 조디 포스터, 드류 베리모어, 엘렌 페이지, 웬트워스 밀러 등 배우들과 영화 ‘헤드윅’으로 유명한 존 캐머런 미첼 감독, ‘엘렌쇼’의 엘렌 드제너러스, 코미디언 로지 오도넬, ‘그래미 어워즈 4관왕’의 가수 샘 스미스 등도 자신의 성향을 당당히 밝히고 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하비 밀크(왼쪽) 전 시의원과 조지 모스코니 전 시장. AP 연합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하비 밀크(왼쪽) 전 시의원과 조지 모스코니 전 시장. AP 연합뉴스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려는 성 소수자들

최근에는 현실 정치를 통해 사회의 법과 제도에 변화를 주려 나아가는 동성애자들도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은 모습인데요. 앞서 살펴본 미국의 하비 밀크 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은 3번의 낙선 끝에 당선된 후 동성애자 권리조례를 제정하는 등 인권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미국 연방 상ㆍ하원 의원들 중에서도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이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고, 2018년 콜로라도주에서는 재러드 폴리스 당시 민주당 후보가 지지를 얻으면서 ‘커밍아웃 후 당선된 최초의 주지사’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부치지지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돼있죠.

유럽은 미국에 비해 동성애 문제에 조금 더 개방된 편입니다. 2001년 네덜란드가 동성 결혼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합법화하면서 다른 유럽 국가들로 확산됐죠. 세계 최초로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힌 국가 수반은 요한나 시귀다르도티르 전 아이슬란드 총리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 총리이기도 했죠. 핀란드에서는 2012년 이미 페카 하비스토가 커밍아웃 한 후 대선 사상 첫 동성애자 후보로 나섰고요. 34살로 세계 최연소 국가 정상이 된 산나 마린 현 총리는 레즈비언 부부 아래서 자란 이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현 총리 또한 2013년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힌 후 총리가 됐는데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1년 만에 남편과 공식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 리오 아나 브르나비치 세르비아 총리, 엘리오 디 뤼포 전 벨기에 총리 등 성 소수자인 국가 수장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서 각기 13년간이나 시정을 책임진 클라우스 보베라이트와 베르트랑 들라노에 전 시장도 동성애자 정치인으로 유명하죠.

동성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왼쪽) 감독과 커밍아웃 후 제18대 총선에 출마한 최현숙 당시 후보. 연합뉴스
동성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왼쪽) 감독과 커밍아웃 후 제18대 총선에 출마한 최현숙 당시 후보. 연합뉴스

한국은 어떨까?

그렇다면 한국의 성 소수자 인권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요? 최근 성전환 수술을 하고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렌스젠더 신입생이 반대 여론에 못 이겨 결국 입학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죠. 이 반대 여론에 대한 비판 여론도 상당한데요. 앞서 유명인사 중에서는 홍석천씨가 2000년 한국 연예계에서 최초로 커밍아웃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공개적으로 깨운 바 있습니다. 이듬해에는 가수 하리수씨가 트렌스젠더인 것을 밝히면서 대중적 관심이 확장됐죠.

퀴어 영화 ‘친구 사이?’ 등을 만든 김조광수 감독은 지난해 정의당 차별금지법추진위원장으로 임명됐는데요. 영화감독인 동시에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2013년 자신의 동성 연인이었던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후 ‘구청이 혼인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현행법 체계에서는 허용 된다 볼 수 없다”라며 각하를 결정했죠.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성 소수자가 발을 디딜 곳을 찾아보기는 더욱 요원할 따름입니다. 한국에서 동성애자인 것을 커밍아웃 한 최초의 정치인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최현숙 당시 진보신당 후보인데요. 성 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 의제화하겠다는 목적을 밝혔었죠. 결과적으로는 1.61%의 득표율로 낙선했습니다. 성 정체성이 유별날 것 없는 개개인의 특성으로 존중 받는 날이 오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듯 한데요.

세계가 주목하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꿈틀대는 ‘부치지지 돌풍’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벽장 문을 여는 변화를 불러올 계기가 될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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