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하버드ㆍ예일대 등 조사 착수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명문 대학들이 외국에서 장기간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처럼 미국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의 돈도 신고 없이 이들 대학에 유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암암리에 이뤄지던 미 학계의 ‘차이나머니’ 수수 관행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기술탈취 등 국가안보 문제로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현지시간) 교육부가 하버드ㆍ예일대에 외국 정부ㆍ기업에서 받은 증여 및 계약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현행 미 연방고등교육법은 대학들이 해외에서 매년 25만달러(약 3억원) 이상을 기부 받으면 내역을 당국에 신고하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최근 수년간 해당 규정을 어긴 행태가 만연했다는 것이 교육부의 판단이다. 실제 지난해 6월 교육 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이래 대학들이 보고가 누락됐다며 자진 신고한 액수만 65억달러(7조6,800억원)에 달했다.
앞서 지난해 조지타운, 코넬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등도 자료 제출을 거쳐 조사가 진행 중이다.
미 당국이 대학 해외자금 출처 추적에 나선 것은 다분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위협인 중국이 기술을 빼돌리거나 선전활동을 목적으로 대학 기부금 및 연구협력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단적으로 교육부는 하버드대에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ㆍZTE를 콕 집어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예일대 역시 2014~2017년 누락된 비슷한 자료 제출을 요구 받았다. 러시아 민간 보안기관 카스퍼스키연구소,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 알라비재단 등의 기부 내역도 제출 자료 목록에 포함됐다.
미 행정부와 정치권은 이미 학계로 유입되는 막대한 차이나머니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 미 상원은 지난해 2월 중국 정부가 세계 162개국에서 운영하는 ‘공자학원’이 미 대학들에 지원한 자금 중 70%가 부실 보고됐다고 공개했다. 공자학원은 어학ㆍ문화 교육기관으로 알려졌지만, 서방 국가들은 이 단체를 정치선전을 위한 중국 정부의 해외 교두보로 확신한다.
물론 일부 대학은 해외자금을 안보위기와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 비약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가기밀이 아닌 이상 연구에 제약은 없어야 하며, 국제 협력도 학문 발전의 필수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신고 누락 역시 교육부의 모호한 지침 때문이라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하버드대의 저명 과학자가 중국 정부와 연계된 사실이 밝혀지는 등 실제 발각 사례가 나오면서 해외자금에 대한 미 정부의 견제ㆍ감시 수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미 국립보건원(NIH)과 국방부에서 자금 지원을 받던 하버드대 화학ㆍ생물학과장이 중국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계획’ 참여 사실을 숨기다가 적발돼 지난 달 기소된 게 대표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 정부 기조에 따라 이미 지난해부터 미 대학들이 줄줄이 화웨이ㆍ공자학원과 계약을 해지하거나 공동 프로젝트를 축소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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