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반도체·디스플레이 화학소재 제조사 에버켐텍
“일본이 독점하던 화학소재를 국산화한 게 벌써 10년 전이네요. 이제는 일본을 넘어 중국, 아니 세계로 갈 겁니다.”
지난 10일 경기 화성시 바이오밸리에 있는 에버켐텍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민 대표가 자신 있게 말했다. 에버켐텍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표면 처리에 꼭 필요한 화학소재인 대전방지코팅제 분야에서 일본과 함께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주력 제품 대전방지코팅제는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조 공정에서 정전기를 방지하기 위해 표면에 처리하는 소재다. 에버켐텍이 2008년 처음 국산화에 성공하기 전까지 국내 대기업들은 이를 전량 일본에서 수입했다. 에버켐텍 제품이 가져온 수입 대체 효과만 지금까지 2,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화학소재 분야 벤처와 중소기업에서 15년 이상 일한 신소재 ‘연구통’ 이 대표는 2008년 1월 에버켐텍을 설립했다. 당시 국내 기초 화학소재 시장은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대전방지코팅제 제조에 필요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이 대표는 “일본 기업들이 기술 노출을 꺼린 탓에 제품을 구하기조차 힘들었다”며 “소재 국산화에 대한 의지가 아니었다면 높은 벽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에버켐텍이 만든 대전방지코팅제는 국내 대기업 공급은 물론 중국과 동남아시아로도 수출된다. 국산화 10여년 만에 에버켐텍은 국내 대전방지코팅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며 ‘극일기업’으로 우뚝 섰다.
최근 에버켐텍은 식품 분야로도 영역을 넓혔다.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을 받아 식품 포장재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에틸렌비닐알코올(EVOH)’을 대체할 신소재를 개발했다. EVOH는 외부 산소 유입을 막아 식품 부패를 방지하는데, 일본 기업 쿠라레이가 세계 EVOH 시장을 꽉 잡고 있다. 국내 즉석밥 뚜껑에 들어가는 EVOH 역시 쿠라레이 제품이 많다.
이 대표는 “동물성 단백질로 EVOH 대체용 신소재를 만들었는데, 일본 제품에 비해 친환경적이고 가격 경쟁력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에버켐택의 신소재는 이미 국내 몇몇 중소 식품업체와 계약해 포장재로 사용되고 있고, 독일 국책 연구기관과도 기술 제휴를 모색 중이다. ‘장벽을 넘은 제품’의 의미로 ‘넥스리어(next+barrier)’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에버켐텍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중소기업의 생명은 연구개발(R&D)이라는 이 대표의 철학에 따라 에버켐텍은 직원의 60% 이상이 R&D 인력이다. 회사가 보유한 국내외 특허만 24건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후 국내에 불고 있는 소재ㆍ부품ㆍ장비 국산화 바람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기술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단기간에 큰 이익을 올리기 힘든 기초소재 분야 중소기업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정부가 ‘반짝’ 관심에 그치지 말고,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는지 끝까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지난 해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우리나라 소재ㆍ부품ㆍ장비 분야의 기술 자립 중요성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일보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소부장 강소기업 100’에 선정된 기업들의 핵심 기술과 경쟁력을 격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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