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가 결혼하지 않는 ‘사제독신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사제들의 성추문과 관련한 ‘비밀유지법’을 없애는 등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던 교황이 개혁을 택할 수도 있다는 일각의 예측은 빗나갔다. 900년간 이어온 전통을 허물기엔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12일(현지시간) 남미 아마존의 주요 이슈를 논의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관련 교황 권고를 발표했다. ‘친애하는 아마존’이라는 이름으로 낸 권고문은 아마존 지역 내 사회정의와 환경 보호, 원주민 인권 보호 등만 강조하고 주요 쟁점이 됐던 남성 기혼자에게 사제 서품을 주는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독신제 전통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열린 시노드의 최종 권고문에 사제 부족 문제가 심각한 아마존 지역에 한해 기혼 남성에게 사제 서품을 주는 안이 포함돼 사제독신제 논쟁을 재점화했다. 당시 찬성 측은 아마존의 경우 신부가 절대 부족해 미사를 열 수 없다는 현실론을 들었다. 반면 보수 성직자들은 오랜 전통의 파괴가 교회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서에서는 사제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 중세 들어 종교의 세속화 논란이 커지자 가톨릭이 ‘금욕’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면서 1123년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독신제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세기 중반 공론화가 됐지만 변화는 없었다.
일각에선 교황이 판단을 유보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진보적이라는 평을 들었던 교황의 선택에 대한 실망 섞인 목소리도 제기됐다. 시노드 권고안에 포함된 또 다른 쟁점인 여성 부제(사제 아래 지위) 서품 역시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전날 미국 주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교황이 기혼 성직자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직접 피력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미 CNN방송은 이번 결정이 미주와 유럽 등의 자유주의 교황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고 평가했다. 마시모 파기올리 미국 빌라노바대학교 교회 역사학자는 “(이번 결정으로)사람들은 기대 수준을 조정하게 될 것”이라며 “교황에게 기대했던 주요 개혁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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