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와의 전쟁’, 최전선에 선 역학조사관
‘사생활 침해’ 항의엔 ‘공공성’ 강조하며 달래기도
지난달 말, 국내 세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찾은 역학조사관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 도착한 후 몸살 기운이 있었다는 본인 진술에 따라 접촉자 조사 대상 범위를 한정했는데, 카드 사용 내역서에는 그 전에 약국을 방문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기억하는 것보다 먼저 증상이 나타났을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었다. 증상 발현 시점부터 바이러스가 타인에게 전파되기 때문에 이 시점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게 방역의 핵심. 역학조사관들이 환자에게 재차 확인했더니, 이 환자도 더 이른 시점부터 몸이 안 좋았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박영준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2팀장이 12일 기자들과 만나 역학조사관의 노하우가 빛났던 순간으로 꼽은 장면이다. 역학조사관들은 환자가 정정한 정보를 토대로 접촉자 조사 대상 범위를 즉각 확대할 수 있었다. 박 팀장은 “환자가 불러주는 대로 조사하면 허점이 생긴다”며 “‘밥은 누구와 먹었는지’, ‘호텔에서 이동할 때는 뭘 탔는지’, ‘집은 단독주택인지 아파트인지’, ‘아파트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지’ 등 일상 생활의 동선, 행동을 추론해서 끌어내는 게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역학조사관들은 지난달 20일 국내 첫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가 발생한 직후부터 분, 초를 다투고 있다. 환자의 감염 경로와 동선, 접촉자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찾아내야 감염병 확산을 차단할 수 있어서다. 증상 발현 시점이 정해지면 폐쇄회로(CC)TV와 카드 사용 내역서, 휴대폰 위치 추적 등 정보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증상 발현 24시간 전부터 확진 당일’까지의 행적을 되살려 접촉자를 가려낸다.
하지만 신종 감염병이라는 특성상 베테랑의 노하우가 무색해지는 순간도 없잖다. 박 팀장은 “해외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다 보니 판단이 쉽지 않다”며 “사례정의(감시ㆍ관리가 필요한 대상 선별 기준)에 맞지 않는 환자가 발생하면 대응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전했다. 예컨대 일본 확진환자와 접촉한 뒤 국내에 입국한 12번 환자(48세 중국인 남성), 태국 여행을 다녀온 뒤 확진된 16번 환자(42세 한국인 여성) 등이 그런 경우다.
역학조사라는 게 사생활을 속속들이 캐묻는 일이다 보니 환자들이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적잖다. 정부는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 때부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확진자의 동선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는데, 확진환자들에겐 사생활 노출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박 팀장은 “범죄자 취급한다고 느껴 협조가 잘 안되거나 세세한 활동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며 항의하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도 오롯이 역학조사관의 몫이다. 그는 “그 때는 ‘처벌’이나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성’과 ‘지인들의 보호’를 위한 일이라고 설득한다”고 했다.
박 팀장은 ‘가짜 뉴스’ 자제를 당부했다. 그는 “가짜 뉴스를 확인하다 보면, 많지 않은 인력의 대응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당장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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