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기회다. 가끔 토네이도가 불어와 자연계의 전격적인 순환이 이뤄지듯이 선거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변화의 기회다.
최근 뜨겁게 일어나고 있는 여성 정당(‘여성의당’) 창당 움직임이 기성 정치판을 휘저어 놓을 회오리바람이 될 수 있을까? 영화 ‘기생충’이 ‘백인 남성’ 중심이라고 비판받던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92년의 장벽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폭풍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여성정당이 있었다. 그것도 광복 이틀 후 등장했다. 1945년 8월 17일 창당한 조선여자국민당(위원장 임영신)은 신한국 건설과 남녀 평등권을 표방하고 ‘여성의 힘을 모아 남성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민주사회 건설’을 정강에 담았다. 당원이 30만명이나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3년 후 출범한 제헌국회는 여성 의원이 한명도 없었다. 이듬해 보궐선거에서 임영신이 당선해 대한민국 첫 여성국회의원이 되었다.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여자국민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유당의 외곽단체 역할을 해오다가 1961년 5ㆍ16 때 해산됐다.
2020년, 두 번째 여성 정당이 태어난다. 여성의당은 여성주의 정당을 내걸고 대표단을 10대부터 70대까지 7명으로 구성하고, 하부 조직을 기존의 수직적 조직이 아닌 다양성을 지닌 네트워크 조직으로 하는 등 민주적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의당’이 15일 중앙당 발기인대회를 갖고,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창당대회를 열기 위해 분주하게 달리는 중이다. 여성의당은 단순히 여성들의 집합이 아니라 그동안 여성운동의 역량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 또 가치 지향에서 여성주의를 분명히 표방하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집권당 대표를 여성이 맡고, 여야 모두 여성 원내대표가 활약하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여성’을 당명으로 내세우는 정치적 결사체가 필요한가? 그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기존의 정치 구도 안에서 주요 지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여성 정치가 이뤄지고 있는가, 반문할 수 있다.
지금 여성주의 정당이 등장한 배경은 세 가지다. 첫째, 2016년 ‘촛불’ 이후 등장한 진보 정권의 여성주의 실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다. 현 정부는 여성 각료가 30%인 국무회의를 만드는 성과를 냈지만 성범죄로부터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등 여성의 생활은 여전히 불안하다. 성평등 실현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둘째, 선거법 개정으로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이 더 용이해졌다.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할 때 3%(약 70만표)를 득표하면 4, 5석의 원내 진입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소수정당의 진입이 쉬워짐에 따라 여성 의제에 집중하는 여성주의 정당이 존립 기반을 갖게 됐다.
마지막으로 2030 젊은 여성들의 정치력 성장이다. 최근 20대 여성들은 높은 투표율과 진보 성향의 투표 경향을 보인다. 여성주의 개념을 장착한 디지털 여성 시민들이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과 2018년 ‘미투’ 정국, 연인원 35만명을 불러낸 ‘혜화역 시위’를 거치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북유럽에서 여성주의 정당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Feminist Initiative 약칭 F!)’는 2005년 창당해 5년 후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노르웨이(2015년), 핀란드(2016년)에도 같은 이름의 정당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여성연맹(Women’s Alliance)’은 의석을 6석 확보한 뒤 기성정당과 통합되었다. 영국 여성평등당(Women’s Equality)도 있다.
3월 8일 출범할 여성의당은 시작 그 자체로 이미 성공이다. 사명감으로 뛰고 있는 여성의당 일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내놓을 정책이 기대된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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