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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 피자 가게에 흥분…기생충 흔적 찾아 나선 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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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 피자 가게에 흥분…기생충 흔적 찾아 나선 외국인들

입력
2020.02.12 14:37
수정
2020.02.1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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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슈퍼’ 기념 촬영하러 온 일본인ㆍ 피자 가게 인증한 태국인

‘신종 코로나’ 잠재우고… ‘기생충’ 촬영지 관광 명소로 부상

‘돼지쌀슈퍼’서 인근 가파른 계단까지… 마포구 ‘기생충’ 골목 투어로 개발

태국인 마기(오른쪽)씨가 11일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에서 일행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마기씨의 뒤엔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축하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 가게는 영화에서 충숙(장혜진)이 밥벌이를 위해 피자 포장 박스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다. 양승준 기자
태국인 마기(오른쪽)씨가 11일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에서 일행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마기씨의 뒤엔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축하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 가게는 영화에서 충숙(장혜진)이 밥벌이를 위해 피자 포장 박스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다. 양승준 기자

“소 서리얼(so surrealㆍ너무 초현실적이야)!”. 1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 태국에서 왔다는 마기(29)씨는 친구와 함께 셀카봉으로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곳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지난 10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 촬영지였다. 극중 충숙(장혜진)이 밥벌이를 위해 피자 포장 박스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로, 연교(조여정)네 집에서 집사인 주연(이정은)을 몰아내기 위해 두 자식과 공모를 벌이던 장소였다. 최근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는 마기는 “ ‘기생충’을 인상 깊게 봐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이 가게를 찾아왔다”고 말하며 웃었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조조의 기묘한 모험'을 만든 프로듀서 카사마 노부타카(오른쪽)씨가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를 찾아 영화에 쓰인 피자 케이스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엄항기 씨 제공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조조의 기묘한 모험'을 만든 프로듀서 카사마 노부타카(오른쪽)씨가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를 찾아 영화에 쓰인 피자 케이스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엄항기 씨 제공

‘노르웨이 사위’ 가 촬영 추천

영화에서 ‘피자시대’로 소개된 이 가게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 ‘기생충’ 해외 팬들의 ‘성지’가 됐다. 가게 방명록엔 ‘아카데미 4관왕 정말 대단하다’ 등 일본어와 영어로 적힌 방문 소감이 빼곡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뒤 10일과 11일 미국인 멜리사 세라노와 일본인 다카코씨 등이 가게를 찾아 남긴 흔적이었다. 가게 주인인 엄항기(65)씨는 한국일보와 만나 “ ‘기생충’에서 봤다며 찾아와 피자를 사간 미국인도 있다”라며 “2018년 6월께 여기서 촬영했는데 날이 엄청 더워 봉준호 감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촬영하던 게 생각난다”고 영화 촬영 뒷얘기를 들려줬다. 애초 이씨 부부는 ‘기생충’ 촬영을 거부했다. 그러다 ‘괴물’을 보고 봉 감독의 팬이 된 노르웨이 국적의 사위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마음을 돌렸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뒤 하루 뒤인 11일 촬영지인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를 찾은 미국인들이 쓴 방명록. 엄항기 씨 제공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뒤 하루 뒤인 11일 촬영지인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를 찾은 미국인들이 쓴 방명록. 엄항기 씨 제공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뒤 하루 뒤인 11일 촬영지인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를 찾은 일본인 다카타씨가 쓴 방명록. 엄항기 씨 제공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뒤 하루 뒤인 11일 촬영지인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를 찾은 일본인 다카타씨가 쓴 방명록. 엄항기 씨 제공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서울시 내 영화 촬영지가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마포구의 ‘돼지쌀슈퍼’와 가게 인근 계단, 종로구에 위치한 자하문 터널 계단 등에 외국인 영화 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위축된 국내 관광 현실과 달리 영화 촬영지를 직접 찾아 작품의 여운을 즐기려는 이색 행렬이다. ‘기생충 특수’에 자치구도 영화 촬영지의 관광 코스 개발에 나섰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가 친구인 민혁(박서준)으로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으며 소주 잔을 기울인 장소다. '우리슈퍼'로 등장한 이 곳 아이스크림 냉장고 옆에 테이블을 펼쳐 놓고 두 배우가 앉아 연기했다. 양승준 기자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가 친구인 민혁(박서준)으로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으며 소주 잔을 기울인 장소다. '우리슈퍼'로 등장한 이 곳 아이스크림 냉장고 옆에 테이블을 펼쳐 놓고 두 배우가 앉아 연기했다. 양승준 기자

‘기생충 슈퍼’와 가파른 계단 가보니

아카데미 시상식 후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찾은 ‘기생충’ 촬영지는 축제 분위기였다. 마포구 주민 장(54)모씨는 11일 오후 6시께 돼지쌀슈퍼를 찾아 문을 열자마자 주인인 이정식(77)ㆍ김경순(73)부부에게 “축하합니다”라고 인사 먼저 했다. 올림픽에 내보낸 자식이 금메달을 딴 부모에게 지인들이 너도나도 축하 인사를 건네는 풍경 같았다. 이 가게는 영화에서 기우(최우식)가 친구인 민혁(박서준)으로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으며 소주 잔을 기울인 장소로 3분 여 동안 등장했다. 영화에선 가게 이름만 바뀌어 ‘우리슈퍼’로 등장한다. 가게 주인 김 씨는 “한 시간 전에도 일본 사람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같다”며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여줬다. 캐나다와 스페인에서 왔다는 외국인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40여 년 동안 이 자리에서 슈퍼를 운영한 이씨 부부에게 ‘기생충’ 촬영은 영화 같은 경험이었다. 김씨는 “이런 쪽(문화)에 관심을 안 두고 살아 2018년 8월에 촬영하러 왔을 때도 송강호가 누군지 몰랐다”며 “그때만해도 영화가 이렇게 잘 될지 몰랐는데 신기하다”며 멋쩍어했다. 이씨는 “내가 돼지띠고 재물 운 좀 들라고 가게 이름을 돼지슈퍼라고 지었는데 그 운이 영화로 옮겨 간 것 같다”며 농담했다.

슈퍼 인근 후미진 골목에도 볕이 들었다. 극중 기정(박소담)이 복숭아를 들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집으로 가는 도중 나오는 가파른 계단도 사진 촬영 명소가 됐다. 이곳저곳 금이 가고 구석구석 이끼가 껴 극중 기택(송강호)의 반지하에서 나온 곱등이가 어디서든 튀어나올 분위기였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이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도망갈 때 이 계단을 내려간다. '돼지쌀슈퍼' 바로 옆 골목으로,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곳에 있다. 양승준 기자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이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도망갈 때 이 계단을 내려간다. '돼지쌀슈퍼' 바로 옆 골목으로,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곳에 있다. 양승준 기자

촬영지 보존이냐 개발이냐

‘기생충’에서 골목길과 낡은 계단 등의 장소는 영화의 주제인 공생의 어려움을 전달하는 제2의 주인공이다. ‘기생충’ 촬영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이어 받아 마포구는 ‘기생충길’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돼지쌀슈퍼에서 인근 골목의 가파른 계단까지 이어지는 손기정로32 일대를 골목 투어 코스로 개발하는 게 골자다. 마포구 관계자는 “이 지역은 서민 삶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인근 주민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촬영 시점의 마을 원형을 보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민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품은 ‘기생충’ 촬영지가 주목받으면서 일부 지역에선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이견이 풀어야 할 숙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스카이피자의 엄씨는 “가게 인근이 재개발 지역으로 정해졌다”며 “우리 가게도 이르면 5년 뒤 재개발이 이뤄질 것 같은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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