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님은 왜 기자실로 안 오시지?”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열린 9일(현지시간). 시상식장인 돌비극장 옆 로우스호텔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한국 기자들은 갑자기 의문을 품게 됐다.
이날 수상 결과가 하나하나 발표되면서 먼저 상을 받은 수상자 순으로 기자실을 찾았다. 첫 수상자였던 배우 브래드 피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가 기자실 무대에 가장 먼저 올라 질문에 응했다.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토이스토리4’의 조시 쿨리 등 3명도 기자실을 찾았고,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헤어 러브’의 매슈 체리 등도 기자들과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다. 이제 이날 네 번째로 발표된 각본상 수상자,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올 차례였다. 하지만 기자실에 등장한 이는 각본상 다음에 발표된 각색상의 수상자인 ‘조조 래빗’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었다. 행사 진행하다 보면 앞뒤가 좀 바뀔 수도 있으니까, 라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봉 감독과 한 작가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러 부문 후보에 올라 시상식장에 남아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와이티티 감독은 작품상 후보에도 올라 있었다. 와이티티 감독은 기자실에서 만담 비슷한 답변을 하다가 ‘조조 래빗’에서 자신이 연기한 한 장면을 재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선 시상식 무대에 올라가 시상을 하기도 했다. 봉 감독 등이 짬을 내지 못 하는 건 아니라는 추정이 가능했다. 적어도 상 하나를 더 주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봉 감독은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다. 이제 기자실에 등장할 때가 됐다고 봤다. 하지만 봉 감독은 나타나지 않았다. 감독상까지 주려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국제영화상으로 수상은 끝이라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여겼던” 봉 감독의 생각과 달리 감독상 수상자로까지 호명됐다.
봉 감독은 감독상을 받은 후에도 기자실에 오지 않았다. 작품상을 받을지 모른다는 예감이 엄습했다. 여러 상을 받을 감독이 기자실을 들락거리면 번거롭기도 하고, 기자회견 자체가 힘이 빠질 수 있다고 아카데미상 측이 미리 계산하고 있는 인상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기생충’은 92년 아카데미상 역사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로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봉 감독은 기자실에 등장한 마지막 수상자였다. 아카데미상 측은 최고의 상을 받은 감독을 임팩트 있게 기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봉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시상식 직전부터 예감됐다. 아카데미상 측이 샤론 최와는 별도로 한국어 통역을 급히 구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아카데미야,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이 순간 스치던 하루였다.
로스앤젤레스=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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