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말을 넘어 마음까지 영어로 전달한다는 찬사 받아
영화 ‘기생충’이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수상하면서 세계무대에 선 봉준호 감독의 곁을 지킨 ‘언어의 아바타’ 최성재(샤론 최)씨가 화제가 되고 있다.
봉 감독은 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위해 무대를 4번 올랐고, 그때마다 통역가 최성재씨가 함께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 백 스테이지에서 ‘샤론 최가 화제였다’는 질문이 나오고, 영국 출신 언론인 피어스 모건이 그를 두고 ‘이름 없는 영웅’으로 칭하는 등 최씨를 향한 찬사가 이어졌다. 그의 세심한 통역이 기생충의 수상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외신도 주목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 샤론 최를 위한 박수갈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씨의 통역 실력을 칭찬했다. CNN은 이날 봉 감독이 국제극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아침까지 밤새 술 마실 준비가 됐다”라고 한 말을 인용해 “열심히 일한 샤론 최도 한 잔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 시상식이 끝난 직후 최씨에 대한 별도의 기사를 내보냈다. NYT는 “무대 위 최씨의 차분한 존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며 “봉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샤론 최가 엄청난 팬덤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는 그를 ‘오스카 시즌의 MVP”라며 “다음에는 그가 자신의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현재 유튜브(Youtube)에도 샤론 최의 통역 장면을 담은 영상이 조회 수 100만 회를 넘길 정도로 인기다. ‘미국 기자의 곤란한 질문에 능숙 대처’ (152만회), ‘가장 어렵다는 한국어 유머 통역하기’(111만회), ‘기생충 영화 흥행에 샤론 최 통역사가 주목받는 이유 분석’(114만회) 등 통역 동영상이 이번처럼 화제가 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봉 감독과 기생충의 출연자들의 말을 재치 있게 통역한 최씨의 어록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미국 NBC 토크쇼 ‘더 투나이트쇼’에서 진행자 지미 팰런이 기생충의 내용을 묻자 봉 감독은 “스토리를 모르고 봐야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 말을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라고 재치 있게 통역하며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전했다. 봉 감독이 “(배우들을) 살아서 날뛰는 물고기처럼 만들어주고 싶은데”라고 한 말도 “I want them feel like their fish flash out of water free to flap around whenever they want”라고 옮겼다.
봉 감독이 그를 곤란하게 만들려 한 장난에도 무난하게 대처한 데에는 샤론 최의 역할이 컸다. 봉 감독은 “클라이맥스고 여러분이 보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장면을 사실은 되게 빨리 찍었어요. 정말 강한 뙤약볕에서 그 신을 찍어야 한다고 나와 촬영감독은 생각했었거든요”라는 말을 하며 일부러 뙤약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최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를 “So all those scenes shot that very important in the climactic sequence, we actually shot them very fast. The DP and I were very insistent from the beginning that this scene had to take place under the intense sunlight”라고 표현하며 뙤약볕을 의미를 분명하게 통역했다.
최씨는 한국식 농담도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게 통역했다. 지난달 8일(현지시각) 뉴욕 링컨 센터에서 열린 봉준호 감독 회고전에서 배우 송강호가 영화 ‘살인의 추억’을 소개하면서 “기생충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많이 나와요. 원 없이 볼 수 있습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최씨는 그의 말을 “This movie is so much better than Parasite because you will see more of me in this film. You will be almost sick of me after this film”이라고 구어체로 옮겨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의 완벽 호흡은 샤런 최를 만났을 때 극대화된다. 그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농담도 빠짐없이 통역하기 때문이다. 송강호가 “(봉준호 감독이) 20년 전보다 점점 더 몸이 불어나가지고, 다음 다섯 번째 영화를 하면 몸이 터져버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된다”고 던진 말을 “I’m very concerned that by our 5th project together, he’ll explode”라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이뿐만 아니라 송강호와 봉 감독이 주인공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I’ll give you guys the brief context where they were laughing. Director Bong tried to explain the line from the son called him the main character and apologized Song over here for calling him the main character”라며 맥락을 전해 해외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샤론 최와 봉 감독의 앙상블은 영화 ‘기생충’이 4관왕을 차지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빛났다. 봉 감독이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오등분 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하자 최씨는 “If the Academy Allows, I would like to get a Texas chainsaw, split the award into five and share it with all of you”라고 표현해 후보에 함께 오른 감독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지난해 5월에 열린 칸 영화제 때부터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은 최씨는 전문 통역가가 아님에도 봉 감독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하며 옮기며 주목을 받았다. 최 씨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25세, 단편 영화를 만든 적이 있으며, 현재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감독이라는 정도다. 봉 감독은 시상식 후 진행한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최씨가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현재 장편 영화를 각본을 쓰며 준비 중이다. 나도 그가 쓴 각본의 내용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단편 영화를 감독한 신인감독이라는 최씨는 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 봉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옮길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해주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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