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와 영화인이 세계 영화사와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주요 4개 부문 석권 이후로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숱한 기록으로 세계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영원히 장식한 클래식 명작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로써 한국 영화의 위상은 이전에 비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가게 됐다.
특히 봉준호 감독에 앞서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았던 비영어권 영화인들 대부분이 실은 ‘무늬만 비영어권’이었거나,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하고 있었던 걸 감안하면 그 성과는 더욱 눈부시다.
예를 들어 아시아 영화인 최초로 감독상을,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챙겼던 리안 감독은 대만 출신이지만 할리우드 자본과 기술의 도움으로 주된 커리어를 쌓아 왔다.
반면, ‘기생충’은 봉 감독이 순수 한국 자본과 동료 영화인들의 힘을 빌린 ‘토종’ 한국 영화로 ‘100% 메이드 인 코리아’다. 따라서 이번 수상으로 실력을 공인받은 우리 영화 인력의 할리우드 진출 가능성이 대단히 커졌고, 명실상부한 ‘영화 강국’으로 우뚝 설 그날이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아카데미가 안겨준 성과에 마냥 취해 있기엔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우선 봉 감독처럼 자신만의 화법을 펼치면서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데 소홀하지 않은 후배 감독들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반대로 작품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는 고사하고, 상업성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해 허덕이는 연출자들은 대거 늘어났다.
안일하고 얄팍한 기획으로 그저 돈벌이에만 급급한 제작자들이 많아진 것도 문제다. 일례로 오늘의 봉준호가 있기까지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의 실패를 딛고 출세작 ‘살인의 추억’까지 함께했던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 첫 메가 히트작 ‘괴물’을 제작했던 청어람 최용배 대표 같은 이들의 헌신적인 조력이 크게 한몫 했던 걸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한국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론 2000년대 초중반부터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이 쏟아냈던 거칠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한 작품들의 수는 줄어들고, 일견 매끈해 보이지만 속이 덜 여문 작품들은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양산되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과 끈질긴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감독들과 제작자들이 다시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출발했던 ‘기생충’의 행복했던 여정이 아카데미 주요 4개 부문 석권이란 어마어마한 해피엔딩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기쁨과 환희는 이제 접어두고 다시 출발할 때다. 봉준호만 있는 한국영화가 아닌, 봉준호도 있는 한국영화란 칭찬을 계속 들으려면 말이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