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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법개혁의 결론이 늑장 재판이라니

입력
2020.02.12 04:30
수정
2020.02.17 10: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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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듯이 신속한 재판은 재판제도의 핵심 이상에 해당한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서재훈 기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듯이 신속한 재판은 재판제도의 핵심 이상에 해당한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서재훈 기자

재판이 점점 더 늘어지고 있다. 최근 법원행정처 자료를 인용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민사소송에 소요되는 기간은 지난해 평균 19.6개월로 2년 전에 비해 3.3개월 길어졌고, 형사재판도 불구속재판의 경우 2017년에 비해 약 두 달 늘어나 15.2개월이 걸리며, 행정소송도 2년 전보다 1.9개월 길어진 19.4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장기미제사건들도 늘어나고 있다. 민사 본안사건의 경우 지난해 6월 말 기준 1년 이상 판결이 지연된 사건은 전체 8,818건 가운데 2,965건(33.6%)에 달해 2018년 말(15.4%)보다 배 이상 높아졌다고 한다. 형사재판의 경우도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3년 이상 묵은 사건이 228건으로 2018년 말(139건)보다 70%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민사 형사 행정을 불문하고 이렇게 재판이 늘어지는 현상은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특히 대법원 민사본안사건에 대한 심리불속행비율이 80%에 육박하는 등 심리도 하지 않고 종결시키는 사건들이 늘어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현장에서도 재판 진행 속도가 점점 더 늦어진다는 당사자들과 대리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듯이 신속한 재판은 재판제도의 핵심 이상에 해당한다. 헌법 제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신속한 재판만이 능사는 아니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적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건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전문적으로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항소율이 유지되는 등 재판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와 신뢰도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볼 만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급격한 재판 소요기간 증가는 ‘권리 구제의 정지현상’의 일반화일 뿐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재판지연의 원인으로 최근 법원 내에 확산되고 있는 소위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꼽힌다는 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고등법원 부장판사 임명을 멈추면서 사건처리율을 높이려고 야근을 하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판사들을 독려하던 법원행정처의 권한과 기능이 약화된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사에서 좋은 재판의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사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하였지만 ‘김명수표 사법개혁’의 결론이 늑장 재판이라면 국민 입장에서 결코 납득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법개혁의 결과는 국민들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관의 자율과 독립도 중요하지만 국민으로부터 독립이 되어서는 안된다. 신속한 재판을 위해서는 1심 단계에서 모든 증거가 법정에 현출되도록 하는 증거개시제도의 도입, 상고제도 개혁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축소 등 하급심강화, 신속한 재판진행을 위한 소송지휘권 강화, 재판관련 각종 통계 공개, 잦은 법관 인사의 시정 등 각종 제도개선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울러 성실히 일하는 판사를 중용하고 중요하고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는 재판부에 투입하는 등 재판 수요자 입장에서 행하는 인사도 중요하다. 금년 2월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약 50여명의 판사가 법복을 벗는데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거친 이른바 ‘엘리트 판사’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고 한다. 물론 엘리트 판사가 다 성실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편 가르기로 분열된 법원 분위기에 실망하여 유능하고 성실한 판사들이 많이 떠난다면 재판지연은 더욱 가속할 수밖에 없다. 사법부가 신속하면서도 효과적인 권리구제를 가능케 하는 쪽으로 사법개혁의 역량을 보다 집중하여 국민의 요구에 부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주영 변호사ㆍ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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