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챙겨 보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있다. 마지막 회에 술집을 하고 있는 정희라는 여자가 스님이 된 전 남친을 20년 만에 만나, “니 마음에 걸리라고, 나 막 살아왔는데, 이제 니 마음에 걸리지도 않는 거야? 그럼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니?”라는 회한을 털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명대사로 유명한 그 드라마를 본 후, 많은 대사 중에 “마음에 걸리다”라는 말이 유독 내 마음에 걸렸다.
내 마음에는 무엇이 걸려있을까? 과거의 일, 사람, 생각들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 후회, 아쉬움, 그리움이 늘 걸려있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마음에 걸려있는 생각이나 말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책에서 또 강연에서 설파해서 내가 훈육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공직생활 6년 동안 마음에 걸리는 일은 하지 않도록 입 단속, 몸 조심하면서, 나 자신을 부단히 검열하고 단속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점점 그저 무신경하게, 무기력하게 감정과 말들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사람들, 과거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다른 사람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거침없는 세태들 속에서, ‘까짓 일이 뭐 대수인가,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휩쓸려 지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걸리다, 꺼림칙하다, 찜찜하다’ 이런 말들은 법과 죄에 연관된 말이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안되어도 남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남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 척했거나,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한 것 등이 쉽게 떨쳐지지 않고 마음에 걸리는 일들일 것이다.
마음에 개운치 않은 찌꺼기가 있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바로잡거나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스스로 타이르기도 한다 또한 심각하게 불편하면, 사과도 하고 용서도 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거름망이 망가져 버린 것 같다. 곳곳에서 이유 없는 혐오와 비방이 만연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뉴스에서조차도, “조선족은 치료해 주지 말고, 강제 북송하라” 등 혐오의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설리, 구하라의 죽음 후에 악플에 대해 자성하는 목소리를 높이던 것이 불과 3개월 전인 것을.
기관장으로 회사를 대표할 때, 가장 우려되었던 것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다. 성인들이, 그것도 직장에서 의도적으로 동료를 괴롭히고, 왕따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 없는 일인가? 이런 말과 행동이 걸러지지 않아, 결국 법으로 통제해야만 한다니 아이들 보기 실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내 행동이 타인에게,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좀 더 곱씹어보고, 걸러서 행동할 수는 없을까.
정조는 이산어록에서 “사람은 언어로 한때의 쾌감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안일하면, 마음에 중심이 없고, 방탕하면 기운에 통제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공자는 70세에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른다고 했다. 여기에서 나이 70세는 종심이라 불리는데, 이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거슬리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종심은 한 해 한 해 나이만 먹으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자기성찰 없이는 70세는 그저 나이 많은 철부지 어른일 뿐이다. 바라건대, 마음을 부지런히 거르고, 닦아서 70세 아니 80세에라도 종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늙어 가고 싶다.
거름종이를 통해 걸러져, 좋은 향과 맛만 남은 드립커피 처럼, 마음의 거름망으로 잘 걸러진 나를 만나고,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 (***)
이지윤 플레시먼힐러드 이해관계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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