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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굿모닝 2020s] 비행기 타고 퍼지는 신종 코로나… “인류에게 위험의 바깥은 없다”

입력
2020.02.11 04:3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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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위험사회 

교통 수단 혁신은 전염병 급속 확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여행객이 이동하고 있다. 창 밖으로 항공기가 보인다. 뉴스1
교통 수단 혁신은 전염병 급속 확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여행객이 이동하고 있다. 창 밖으로 항공기가 보인다. 뉴스1

우리 시대에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는 책 가운데 하나는 문명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작이다. ‘제3의 침팬지’에서 ‘대변동’까지 그는 빅 히스토리의 대가다. 특히 ‘총, 균, 쇠’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무기, 병균, 금속이 바꾼 인류 문명의 역사를 다룬 야심만만한 책이다. ‘총, 균, 쇠’는 우리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돌아보고 고민하게 한다.

‘총, 균, 쇠’를 여기서 떠올리는 것은 균의 무서움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잉카 등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 등 전염병을 꼽았다. 만일 현대 문명이 급작스럽게 붕괴한다면, 그 붕괴는 기후 위기 또는 전염병 같은 자연의 복수이거나 핵 전쟁과 같은 과학의 복수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인류는 여전히 허다한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글로벌 위험사회의 도래 

위험사회(risk society)란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만든 말이다. 벡은 1986년 ‘위험사회’를 발표해 현대사회에서의 위험의 중요성을 계몽했다.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벡이 말하는 것은 현대사회가 전통사회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다. 벡이 주목하는 것은 우리 인류가 직면한 위험의 현재적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사회 이전의 ‘오래된 위험’은 자연재해, 전염병, 전쟁 등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위험’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사회발전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지구적 기후 위기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벡에 따르면, 위험사회는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위험은 전염성이 강하다. 둘째, 위험은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과학의 발전에 비례해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넷째,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진다. 다섯째, 시민들의 불안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은 이제 물이나 전기처럼 공적인 소비재가 된다.

이러한 위험사회론을 벡은 글로벌 위험사회론으로 심화시켰다. 위험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벡이 주목하는 세 가지 글로벌 위험은 기후 변화 등 생태적 위험, 금융위기 등 경제적 위험, 자살폭탄 등 테러의 위험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인류가 직면했던 9ㆍ11테러, 금융위기, 기후 위기를 지켜볼 때 글로벌 위험사회론은 21세기적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탁견이다. 사회학자 홍찬숙이 지적하듯, 이러한 글로벌 위험사회의 도래에 맞서 벡이 강조하는 세계시민주의의 정치적 상상력과 실천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의 세계화에서 최근 큰 문제가 된 것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다. 글로벌 위험사회에서는 질병 또한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고 있다. 전염병이 원전이나 기후위기처럼 새로운 위험은 아니다. 중세 시대의 가장 큰 재앙 중 하나였던 페스트는 오래된 위험이다. 그러나 도시화, 교통수단 혁신, 과학기술 발전, 그리고 이런 변동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의 증대는 오래된 위험 또한 세계화시켜 왔다.

5일 서울 성동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의료 시설 보고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착용한 마스크 탓에 안경에 김이 서려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5일 서울 성동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의료 시설 보고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착용한 마스크 탓에 안경에 김이 서려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지난 20세기 이후 역사를 돌아봐도 스페인독감,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돼지독감 등 질병의 세계화가 갖는 위험과 위력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1918,19년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2003년에 나타난 사스는 750명을, 2009년에 등장한 돼지독감은 1만8,500명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폭풍이 세계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2020년대와 위험의 세계화 

2020년대에 글로벌 위험사회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떠할까. 2020년대 벽두에서 만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폭풍은 위험이 세계화된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함의하듯, 우리 인류에게 이제 ‘위험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위험에 따른 ‘공포의 세계화’를 강화시킨다. 특히 전염병의 세계화는 건강과 생명에 직결돼 있는 만큼, 일단 위험이 발생하면 지구 전체를 으스스한 공포의 세계로 몰아넣는다.

중국 우한에서 퍼지고 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가 당국에 끌려가 처벌을 받았던 의사 리원량이 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생전 투병 모습. 리원량 웨이보 캡처
중국 우한에서 퍼지고 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가 당국에 끌려가 처벌을 받았던 의사 리원량이 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생전 투병 모습. 리원량 웨이보 캡처

위험의 세계화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사실은 오래된 위험이든 새로운 위험이든 이 위험이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환경 위기가 국가ㆍ계급ㆍ세대에 따라 불평등한 영향을 미치듯, 위험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국민, 독거노인이나 미취학 아동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험사회가 가져오는 ‘위험의 불평등’ 현상이다.

이러한 위험의 세계화에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네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위험의 세계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위험사회의 대응은 사전 예방과 사후 대처의 이중적 전략을 요구한다. 위험이 세계화된 만큼 지구적 차원의 사전 예방 및 사후 대처를 위해 각종 국제기구들과 개별 국가 간 협력을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둘째, 정부의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이 중요하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정보 전달이 늦어질수록 그 위험은 증폭된다. 위험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일은 국민과 다른 국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거버넌스에 기반해 과도한 공포감이 확산되지 않을 수 있는 대책들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안전을 중시한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개명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 첫 법무부ㆍ안전행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안전을 중시한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개명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 첫 법무부ㆍ안전행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셋째, 위험 대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전염병과 같은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의학ㆍ생물학을 위시한 과학이다. 2001년 4월부터 2002년 8월까지 9ㆍ11테러 등 테러로 인해 8,000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2009년 4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돼지독감으로는 앞서 지적했듯 1만8,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상황이 이러했는데도 대다수 선진국들은 전염병 대처보다 테러 방지에 더 주력해 왔다. 2020년대에 예견되는 위험의 세계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공공기관은 과학 분야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조짐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긴급 회의를 개최한 지난달 23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조짐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긴급 회의를 개최한 지난달 23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위험 판단능력(risk literacy)’ 또한 중요하다.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는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에서 충고한다. “판데믹(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 예방을 위해서는 대중의 위험 판단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 자연 재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무엇보다 대중이 침착성을 유지하며 지시를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 모두가 위험을 정확히 인지하고, 여러 형태의 재앙들이 어떻게 다른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각 재앙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에서 예견하듯, 환경 파괴 등으로 미래에 우리 인류 문명이 붕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험의 세계화는 인류가 안고 가야 할 묵시론적 미래 풍경의 하나다. 이 묵시론적 위협과 공포에 맞설 수 있는 최고의 방책은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 정책과 글로벌 거버넌스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보호복을 입은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차단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군의관과 간호장교. 서재훈 기자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보호복을 입은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차단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군의관과 간호장교. 서재훈 기자

 ◇한국사회와 위험의 세계화 

우리 사회에서 위험사회론이 크게 부각된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였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벡이 말하는 생태 위기의 ‘새로운 위험’은 물론 재난 대처 시스템 부재와 안전 불감증이라는 ‘오래된 위험’이 공존하는 ‘이중적 위험사회’임을 깨닫게 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는 위험의 발생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2020년대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위험은 적지 않다. 폭염 등 기후 변화와 미세먼지 등 환경 위기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그 문명이 결과하는 새로운 위험들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활의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그 과학기술에 내재된 위험을 모두 측정하고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위험의 완전한 제거는 불가능하다. 가능한 한 위험의 최소화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위험사회에 대처하기 위해선 앞서 말했듯 정부의 역할, 글로벌 거버넌스의 강화, 과학에 대한 지원, 그리고 위험 판단능력의 제고가 중요하다. 더하여 사후 대처 못지않게 사전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위험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실천이 더욱 성숙하길 나는 소망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밀레니얼세대’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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