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이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유한국당과의 합당 방침을 밝히면서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보수 통합이라는 국민 뜻에 따르겠지만, 단순히 합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개혁보수로 거듭나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강조하기 위해 불출마 결단을 내린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면서 한국당과 합당을 해도 공천권, 지분, 당직을 일절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보수통합과 개혁보수라는 대의 앞에서 모든 걸 내려놓은 셈이어서 오랜만에 거물 정치인이 자기 희생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 유 의원은 한번 뜻을 세우면 좀처럼 굽히지 않은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다 ‘배신자’ 낙인이 찍혔고, 그 바람에 친정인 보수에서 비토를 당하는 비운의 대선주자가 됐다. 이후 바른정당에서부터 새로운보수당 창당까지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치면서도 거듭 개혁보수의 길로 갔다. 이런 외골수 기질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유 의원은 이날 “사림(士林)의 피를 이어받아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에 충성하는 기개와 품격을 지닌 ‘대구의 아들’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자신의 소신과 지조가 영남 사림 정신에서 기인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 사림은 조선 건국에 가담하지 않고 초야에 묻힌 고려 후기 유학자들의 후예다. 특히 경북 선산으로 내려간 길재(吉再)가 제자를 많이 배출해 영남 지역이 사림의 주축을 이뤘다. 성종 때부터 중앙 정계에 진출한 사림은 주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소속돼 훈구파를 견제했다. 권력을 향한 쓴소리는 보복을 불러왔다. 한번 사화(士禍)를 당할 때마다 사림은 대거 지방으로 내려가 후학들을 키우며 절치부심 재기를 꾀해야 했다.
□ 사림이 목숨을 걸고 그토록 지키려 했던 가치가 유교적 이상 정치의 실현이다. 유 의원에게는 그게 개혁보수다. 이날도 “개혁보수는 한국 보수정치가 가야만 할, 결국 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길”이라고 했다. 핍박을 버티던 사림은 선조 초기 100년 만에 훈구파를 제압하고 주류 권력이 됐다. 이쯤에서 유 의원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타협을 모르는 외골수 기질 때문에 주변 사람이 떠나는 ‘마이너스 리더십’으로 기억될까. 아니면 낡은 보수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세상과 불화했지만 결국에는 보수의 앞길을 제시한 선각자 대우를 받게 될 것인가.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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