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20년의 세월을 초월하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1991년 방송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지난해와 올해 대극장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됐다. 지난달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여명의 눈동자' 재연은 원작의 대서사에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과 웅장한 음악까지 더해 흡입력 있는 무대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래서 20년 만에 만나는 '여명의 눈동자'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동아시아 격변기 10년의 세월이 150분 넘는 러닝타임에 밀도 높게 채워져 있다. 1950년 윤여옥의 재판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방대한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긴 시간에 많은 사건이 등장하지만 이는 모두 역사적 아픔이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명의 눈동자'는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드라마와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음악에 있다. 윤여옥의 '여명 속에 버려진', 최대치의 '멈추지 않는다', 장하림의 '행복하길' 등 각 캐릭터를 대표하는 넘버는 고음 만큼 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이런 단독 넘버 외에도 41명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소리나 송스루 형식으로 진행되는 인물들의 대화도 '여명의 눈동자'의 스케일을 효율적으로 표현한다.
캐릭터들의 새로운 활약도 눈길을 끈다. 권동진 역은 정호근이 연기한 원작과 다르게 해방 이후에도 살아 남아 제주 4.3 사건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아픔을 겪는다. 학도병일 때도, 제주에서 경찰일 때도 누구보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려 하는 권동진의 소신과 눈빛이 관객들에게 윤여옥, 최대치, 장하림과는 다른 느낌으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1막 때 해방 이전을 다루고 2막은 제주 4.3 사건이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프레스콜 당시 노우성 연출은 "우리 선조들이 감당해야 했던 이야기가 전달되길 바랐다. 어떤 해석이든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의도를 밝혔다. 이런 선택과 집중이 있었기 때문에 '여명의 눈동자'는 역사적 아픔을 더욱 뭉클한 울림으로 전달한다.
지리산 엔딩 이후 마지막 장면에서는 윤여옥, 최대치, 장하림, 권동진과 여옥의 아버지, 동진의 어머니까지 모두가 등장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캐릭터들의 삶에 눈물 흘린 관객들도 누군가의 꿈 같은 이런 모습에 커튼콜 때는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공연을 함께 봤고, 이런 세대 통합의 메시지로도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여명의 눈동자' 재연에는 김지현·최우리·박정아(이상 윤여옥 역), 테이·온주완·오창석(이상 최대치 역), 이경수·마이클리(이상 장하림 역), 정의제·한상혁(이상 권동진 역), 조태일(최두일 역)을 비롯해 50여 명의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다. 오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고, 9일 오후 7시부터는 네이버 V LIVE를 통해 실황 생중계가 진행된다.
이호연 기자 ho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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