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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도방어훈련 취소, 신한일어업협정... 영토주권을 포기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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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도방어훈련 취소, 신한일어업협정... 영토주권을 포기 행위

입력
2020.02.0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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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91년 독도방어훈련을 계획하여 1996년 ‘동방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실시했고, 1997년 9회, 1998년 7회, 2002년 5회로 매년 5-9회 한미 합동 훈련과 병행해서 실시되었다.

2003년부터는 매년 전반기 6월경과 후반기 12월경에 실시되어왔는데, 일본의 중단 요구로 훈련이 중단되는 등 일본의 의도에 끌려들까 우려된다. 2004년은 기상악화 이유로 상반기 훈련이 취소되었고, 2008년은 고유가 이유로 상반기 훈련이 취소됐다. 2019년도 1차 훈련은 강제징용 배상문제로 인한 한일관계 악화와 G20 정상회의(6월28일)를 이유로 종래 6월 개최가 연기됐다가, 지소미야(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로 양국이 대립되는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 기존 ‘동방훈련’을 ‘동해영토수호훈련’으로 명칭을 확대 변경하여 역대 최대 규모의 독도방어훈련을 실시했다.

그런데 2차 훈련은 양국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일정도 밝히지 않고 실제 기동 훈련 없이 12월 27일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지휘소 연습(CPX) 방식의 가상훈련 형태로 행해졌다. 이처럼 일본을 의식하여 독도 방어훈련을 취소나 축소 혹은 연기하는 것은 독도의 영토주권을 정치적 행위로 훼손하는 것이다.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로서 완벽하게 존재하려면 국제해양법상 독도 영토가 갖는 12해리 영해, 24해리 접속수역,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확립되어야 한다. 독도가 유인도로 취급되느냐, 무인도(암초)로 취급되느냐에 따라 해양 영역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국제법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무인도라 하더라도 유인도와 동일하게 확보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는 한국영토인 독도와 일본영토 오키섬 사이가 각각 200해리, 즉 합쳐 400해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양 섬의 중간 점을 지나는 선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국제해양법상 18세기 말에 영해 3해리, 1958년에 영해 3해리와 접속수역 12해리, 1973년에 12해리 영해(한국은 1978년 공포)와 24해리 접속수역, 1994년에 12해리 영해와 24해리 접속수역과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한국은 1996년 공포)이 채택되었다.

현재 양국의 해양 경계는 일본의 정치적 요구에 의해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으로 결정되었다. 이 협정으로 양국은 독도 주변 수역을 제외하고는 배타적 경계수역을 확립했다. 독도와 독도 주변수역에 관한 현황을 보면, 독도는 한국이 관할 통치하고 있고 독도기점 12해리 영해를 확보하고 있지만, 24해리 접속수역과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은 축소되고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중간수역이 설정되어 그 내부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큰 문제는 일본이 한국의 독도 관할통치와 12리 영해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도는 영토취득 이론의 무주지 선점이론으로 보더라도 그렇지만, 국제법상 한국의 고유영토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여 정치적 협상으로 한국의 12해리 영해와 24해리 접속수역,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훼손하여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고 한다. 해방 이후 여러 협정에서도 한국은 일본의 논리에 끌려가 독도의 영토주권을 훼손해왔다.

해방 이후 1946년 1월 SCAPIN 677호로 연합국이 독도의 관할통치권을 인정하여 한국영토임을 확인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해양법상 12해리 영해와 24해리 접속수역,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확립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1946년 연합국군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SCAPIN 1033호로 독도기점 12해리까지 일본어선의 접근을 금지했다가, 일본의 집요한 요구로 1949년 SCAPIN 2046호로 독도기점 3해리까지 일본어선의 접근을 허용했다. 이것은 당시 국제해양법상 3해리 영해를 확립하는데 그쳤다.

1951년 9월 대일평화조약에 체결되고 1952년 1월 한국정부가 일본선박의 출입을 금하는 평화선을 선언하여 육지의 해안선으로부터 60마일(독도기점 8해리)을 해양 경계로 삼았다. 이로 인해 3해리 영해는 확보되었지만, 12해리 접속수역(국가통제권)의 일부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1965년 한일어업협정에서는 독도 주변의 12해리를 전관수역으로 인정받아 당시 국제해양법상의 3해리 영해와 12해리 접속수역을 확립했다. 하지만 배타적 경제수역에 해당되는 그 이외의 영역은 공동규제수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독도기점과 일본의 오키섬 기점의 중간점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훼손하였다.

1998년 한국정부는 일본의 정치적 요구로 신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여 독도 영토가 갖는 국제법상 해양영토의 지위를 확립하기는커녕, 오히려 독도 영유권과 독도 기점 12해리 영해조치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독도 주변 해역을 중간수역으로 설정하여 공동으로 어업자원을 관리하도록 함으로써, 점차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장근 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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