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휩쓸었던 ‘블랙베리’가 6개월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PC용 키보드와 같은 배열의 쿼티(QWERTY) 자판이 달려 있고 이메일 등 특화 기능으로 ‘성공한 월가 금융맨의 상징’이자 비즈니스용폰 절대강자였지만, 결국 치열한 스마트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구글과 애플의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장은 단순한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 애플리케이션(앱) 중심의 생태계 시장으로 급변했지만 블랙베리는 그 변화에 올라타지 못했다.
◇너무 늦었나… “블랙베리, 부활 불가능”
지난 3일(현지시간) 블랙베리 모바일 공식 트위터는 “올해 8월 31일부로 TCL과 파트너십 계약이 종료된다”며 “더 이상 블랙베리 스마트폰 제조와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TCL은 2016년 블랙베리로부터 개발, 마케팅, 판매 등 권한을 넘겨받은 중국의 가전ㆍ휴대폰 제조사다. TCL까지 손을 놓으면서 이제 블랙베리는 추억으로 남게 됐다.
캐나다 리치인모션(RIM)이 만든 스마트폰 브랜드로 출발한 블랙베리는 1999년 쿼티 키보드가 달린 무선호출기로 등장했다. 이후 휴대폰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도 다른 휴대폰들은 ‘3X4’ 배열의 물리 키보드를 썼지만 블랙베리는 쿼티 키보드를 고수했다. ‘똑’ 눌리는 특유의 ‘손맛’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키보드로 일정관리, 이메일ㆍ메시지 수발신이 편리해 호응이 높았다.
특히 미국 국방부 승인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보안성을 자랑했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사용한다고 알려지며 ‘오바마폰’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더불어 ‘카카오톡’ ‘왓츠앱’ ‘DM(다이렉트 메시지)’ 등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 블랙베리는 BBM(블랙베리메신저)을 내놓는 등 블랙베리 유저들끼리만 쓰는 자체 생태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폐쇄성이 암초가 됐을까. 초기 일부 유료 서비스는 수익을 가져다 줬지만 지속 성장성을 보여주진 못했다. 결국 블랙베리는 생태계 확장에 실패했고 2008년 전 세계 20%, 미국 44.5%까지 올라갔던 시장 점유율은 2, 3년 만에 1%로 쪼그라들었다.
◇구글ㆍ애플 천하 펼쳐지며 시작된 몰락
무엇보다 구글과 애플의 등장이 치명타였다. 두 기업은 안드로이드와 iOS라는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방대한 앱장터를 열어 빠르게 세를 불렸다. 대화면 터치스크린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쿼티 자판도 일부 마니아층에게만 매력적이었다. 블랙베리 자체 OS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안드로이드폰이나 아이폰에서는 되는 앱이 블랙베리에서 오류가 난다거나 아예 설치가 안 된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부진에 허덕이던 블랙베리는 2016년 자체 제조 중단을 결정하고 TCL에 권한을 넘겼다. TCL은 안드로이드 OS를 받아들여 2017년 ‘블랙베리 키원’을 내놨고 이후 ‘블랙베리 모션’ ‘블랙베리 키투’를 선보였다. 하지만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제조사들까지 뛰어들며 치열해진 경쟁에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블랙베리 키쓰리’를 기다리는 팬들도 많았을 것이다. 블랙베리 스마트폰 사업 철수 소식에 벌써부터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는 ‘블랙베리 삽니다’ 글이 넘쳐나고 있다. 더 이상 블랙베리 신제품이 없다는 사실에 “블랙베리 중고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란 말도 나온다. 블랙베리 모바일 측은 “지난 몇 년 간 파트너십을 위해 힘써 준 TCL에 감사하다”며 “기존에 판매된 단말기 지원은 2022년 8월 31일까지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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