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관으로 군 생활을 하던 사람이 태국에 가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온 후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기를 원하였지만, 성기를 상실했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심사위에 회부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확실히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론을 살펴보면 자신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군인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가슴에 와 닿긴 하지만, 트랜스젠더 수술을 하면서까지 군생활을 하겠다는 소신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로 공감하지 않는 듯하다.
‘트랜스젠더(transgender)’란 자신의 태어난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현상을 말하며 이런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다. 쉽게 이야기하면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이 되고 싶은 사람을 말한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성주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로 진단명을 붙여 오다가 몇 년 전에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으로 변경하였다. 이는 장애라는 단어로 인한 낙인효과를 없애기 위한 것이며, 자신의 태어난 성별과 젠더 정체성의 불일치로 인하여 얼마나 임상적으로 중대한 고통을 겪는 지에 따라 정신질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혼동하고 있는 ‘성적지향성(sexual orientation)’에 대한 정의도 같이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성적지향성이란 특정 성별의 상대에게 성적 및 감정적으로 이끌려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데, 대다수는 당연히 이성애자이지만 일부는 동성애자(게이나 레즈비언)나 양성애자(bisexuality)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들은 자신이 남자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동성인 남자에 대하여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프레드 머큐리나 홍석천씨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가 되고 싶어서(아주 일부는 여자가 남자가 되고 싶은 경우도 있지만)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숙명여대 법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역시 재학생 및 졸업생의 다양한 반대에 휩싸이면서 결국 입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학생은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에 대한 기사를 읽고 용기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번 입학 좌절의 결과에서 보여지듯 여전히 성소수자로서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해 보인다. 하리수씨처럼 오랫동안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트랜스젠더가 여전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것은 아마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잘못된 것이라는 정치적 올바름과, 방송에서나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내 인생에 들어왔을 때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이 서로 충돌하는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중국의 우한에서 온 교민들을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격리시키지 말라는 요구와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이런 태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극복하고 대승적으로 수용을 결정한 아산과 진천의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거부를 정치적인 올바름만으로 비난하면 안되지만, 자신의 태어난 성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결과물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는 있다고 보인다.
‘신경가소성(neural plasticity)’이란 개념이 있다. 이는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의미이다. 이런 유연성은 불필요한 공포를 극복하고 정확한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변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것보다 감정적인 유연성을 넓히는 전략이 필요할 때이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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