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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물량 폭증 ‘헉헉’… 숨 차서 마스크 벗으면 따가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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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물량 폭증 ‘헉헉’… 숨 차서 마스크 벗으면 따가운 시선

입력
2020.02.07 17:36
수정
2020.02.07 19:2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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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이중고’ 배송 전쟁 따라가보니

온라인 구매 늘며 평소 200여개인 박스 300개가 넘어서

감염 위험도 높아 “두고 가세요” 접촉 회피 대상 전락

지난 6일 오후 택배기사 박승환씨가 양손에 택배 상자를 들고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김영훈 기자
지난 6일 오후 택배기사 박승환씨가 양손에 택배 상자를 들고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김영훈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도 가장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건 우리인데 정작 마스크를 배송만 할 뿐 쓸 겨를이 없어요.”

지난 6일 오후 택배기사 박승환(35)씨가 양손에 택배 상자를 가득 들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건물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올라갔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2도의 한파가 몰아친 날인데도 박씨는 얇은 트레이닝복 위에 패딩 조끼 차림이었다. 얼굴에는 요즘 그 흔한 마스크조차 없었다.

박씨는 “새벽 6시부터 강남의 터미널에서 물건을 내리고 오후에 배송하는 살인적인 노동 속에서 마스크는 그나마 부족한 산소를 빼앗는다”며 “직접 물건을 전달한다면 당연히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요즘은 그럴 일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박씨가 보여준 스마트폰의 ‘배송예정정보’에는 오늘 배달할 물량 254개가 찍혀 있었다. 여기에 터미널에서 잡히지 않은 기타 물량까지 합치면 족히 300개는 넘는다. 하루 400개에 육박하던 설 연휴 직전보다야 덜하지만 200개 안팎이던 평소에 비하면 50% 가까이 늘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게 문제다. 박씨는 “명절에는 물량이 몰리는 기한이 딱 정해져 있지만 이번엔 배송 전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쇼핑 주문이 폭주하며 택배기사들이 힘겨운 숨을 토해내고 있다. 감염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어도 특수고용직이라 알아서 조심하며 하루 수백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처지다. 감염을 우려하는 이들의 싸늘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도 전에 없던 고역이다.

지난 6일 택배기사 박승환씨가 배송예정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평소엔 3,4구역의 사무실 물량이 많지만 최근에는 1,2구역의 가정집 물량이 늘었다. 김영훈 기자
지난 6일 택배기사 박승환씨가 배송예정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평소엔 3,4구역의 사무실 물량이 많지만 최근에는 1,2구역의 가정집 물량이 늘었다. 김영훈 기자

신종 코로나는 일반인의 소비 패턴을 일순간에 바꿔버렸다. 감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외부 쇼핑이나 식사를 중단하는 대신 온라인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생필품 판매량은 한달 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주문이 늘어난 만큼 택배기사들도 훨씬 많은 배달 물량을 소화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신종 코로나 공포감을 호소하는 건 마찬가지다.

택배기사 염재훈(가명ㆍ36)씨의 경우 19번째 확진자가 서울 송파구 주민이란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숨이 턱까지 차 올라도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그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숨이 막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감염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쉴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택배기사들은 보통 주 6일, 약 80시간을 일하기로 회사와 계약을 하기 때문에 이를 지킬 수밖에 없다. 박씨는 “4대 보험 혜택도 없어 쉬고 싶으면 하루 일당 보다 훨씬 비싼 용차(대신 배송하는 업체)를 불러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빌라 출입문 앞에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김영훈 기자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빌라 출입문 앞에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김영훈 기자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자 택배 배송 메모에 문 앞에 그냥 놓아 두라는 요청을 적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혹시 모를 감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접촉 자체를 피하려는 의도다. 택배기사들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택배기사는 “숨이 가빠져 잠시 마스크를 벗으면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눈길이 신경 쓰여 최대한 빨리 물건만 내려 놓고 이동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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