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보고서 통해 드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이 무소불위의 ‘비밀 법원’을 통해 반체제 인사들을 처벌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고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각종 개혁 정책 뒤편에서 여전히 조직적인 인권 탄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당초 무장단체 알카에다 관련 테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도 리야드의 특별형사재판소(SCC)가 인권활동가와 반대파 언론인, 지식인, 종교인 등을 억압하고 사법정의를 조롱하는 곳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5년간 SCC에서 다뤄진 재판 95건을 분석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
조사 결과, SCC는 2011년부터 테러 및 사이버범죄 관련 혐의를 광범위하게 적용, 반체제 인사들에게 30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심지어 사형까지 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고하게 사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20명에 달했는데, 이 중 17명은 이미 처형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소부터 판결까지 모든 사법절차는 인권침해로 얼룩져 있었다. 헤바 모라예프 앰네스티 중동ㆍ북아프리카 국장은 “변호인 접견이 금지된 것은 물론, 독방 구금도 흔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고문으로 끌어낸 자백을 결정적인 유죄 근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지난해 테러 관련 혐의로 참수형에 처해진 시아파 무슬림 남성 37명 가운데 상당수가 이 같은 불공정한 재판 끝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전했다. SCC에 억울하게 회부된 피고들 편에 서온 변호사 타하 알하지는 “사우디 사법시스템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없다”고 꼬집었다.
2017년 실권을 잡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여성 운전과 해외여행을 허용하고, 이슬람교의 도덕 규범을 강제하는 ‘종교 경찰’을 축소하는 등 강력한 사회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악명 높은 인권탄압 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 개발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8년 발생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가 지목되면서 사우디의 대외 이미지는 다시 한 번 크게 실추된 상태다. 앰네스티는 “일련의 개혁ㆍ개방 조치는 내부에서 자행되는 탄압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면서 “올해 말 리야드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까지 사우디 당국이 유의미한 인권 개선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압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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