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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속의여론] 건강마저 ‘빈익빈 부익부’… 학력ㆍ소득 낮을수록 몸도 마음도 아프다

입력
2020.02.08 01:00
수정
2020.02.10 09:5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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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불평등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빈부 격차나 소득 불공정 문제에 대해서는 2000년대부터 정부가 꾸준한 재정 투입과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통해 대응해왔다. 반면 건강 불평등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다. 국민들에게도 아직은 낯선 개념이다.

최근 통계개발원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9’에 따르면 개인의 교육, 소득수준, 사는 지역 등에 따른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는 뚜렷하다. 소득 5분위 중 하위 20%와 상위 20%의 기대수명 격차는 2004년 6.24세에서 2017년에는 6.48세로 증가했다. 저학력, 육체직 종사자, 저소득층 자녀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더 큰 건강위협 요인에 노출되고 있다. 부의 불평등이 세습되는 현상처럼 건강 격차 역시 대물림이 되고 있다. 문제는 개개인의 생명과 건강상태가 사회ㆍ경제적 지위와 자산의 크기에 좌우되는 객관적 실태는 물론 주관적 인식에 대한 실증 연구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실태와 인식이 일치하지 않거나 충돌할 때 정책 효과는 왜곡되거나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여론조사센터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한 국민건강보험의 역할’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한 이유다. 조사는 2019년 10월 2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전국 2,000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한국사회 건강불평등 “심각” 60%

먼저 한국사회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물은 결과, 응답가구의 60%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림 1)

특히 주관적 건강상태 평가에서 사회ㆍ경제적 지위에 따른 인식 격차가 뚜렷했다. 동년배 평균과 비교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평가한 결과를 보면 남자보다 여자, 젊은 세대보다 나이든 세대일수록 낮은 점수를 줬다. (그림 2)

소득수준, 교육수준, 취업 상태에 따른 주관적 건강 상태의 격차도 분명했다. 고졸 이하에선 신체와 정신 건강 모두 평균 이하로 평가했다. 비정규직과 비취업자, 월 소득 300만원 미만 가구의 건강 평가도 평균에 못 미쳤다. 신체건강으로 보면 월 소득 700만원 이상과 200만원 이하 가구원의 주관적 신체건강 격차(7.19-6.20=0.99)가 30대 젊은이와 70대 이상 노인의 응답 격차(7.23-6.16=1.07)와 비슷했다. 정신 건강도 700만원 이상 가구원(7.97)과 200만원 이하(7.05)의 격차가 20대(7.87)와 70대 이상(7.03)간 격차에 근접했다.

비취업ㆍ고졸 만성질환, 정규직ㆍ대졸의 3배

건강 불평등은 만성질환 발병률에서도 확인됐다. 의사의 진단을 받아 3개월 이상 약물을 복용하거나 치료를 받고 있는 만성질환이 “있다”는 응답이 최종학력 대학 이상과 정규직 근로자 중에서는 각각 10%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졸 이하 층에서는 39%, 비취업자 층에서는 35%나 됐다. 가구소득 기준으로 봐도 월 소득 700만원 이상 층에서는 18% 수준이었지만 200만원 이하 층에서는 56%나 됐다. (그림 3)

스트레스ㆍ우울증도 저소득ㆍ저학력 높아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 불평등을 유발하는 10대 사회적 요인으로 꼽은 ‘스트레스’의 경우도 교육 수준 및 가구 소득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 최근 한 달 간 스트레스 경험 빈도를 합산해 점수(0~40점, 19점 이상이 고위험군)를 지수화한 결과, 고위험군이 고졸 이하에선 37%인 반면 대학 이상에선 31% 수준에 그쳤다. 가구소득별로는 701만원 이상 가구원은 25%만 스트레스 고위험군인 반면, 200만원 이하 가구원에서는 46%가 고위험군이었다. (그림 4)

우울증도 미국 역학연구센터의 축약형 우울 척도(0~33점)로 측정한 결과, 고졸 이하 저학력층과 월 가구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에서 우울증상 징후가 유의하게 높았다. 우울척도 점수 평균을 보면 가구소득 200만원 이하 가구원은 9.21, 701만원 이상 가구원은 4.69였다. (그림5)

국민건강보험은 치료에 집중, 예방효과 제한적

국민건강보험이 이러한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는 효과를 물은 결과, 48%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긍정 평가(22%)보다 배 이상 높았다. (그림6)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치료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만성질환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류된 512명에게 경제적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치료를 중단한 적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93%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저소득ㆍ저학력층에게도 치료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발병 이후 치료 단계에서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건강보험 보장범위 “적절” 55% “부족” 41%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범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 “적절한 편이다”는 응답이 55%로 과반을 넘었다. “과도한 편”이란 응답 4%를 합하면 전체 국민의 열 명 중 여섯 명이 부족하지 않다고 본 셈이다. “부족하다”는 응답은 41%에 그쳤다. 주목할 점은 교육이나 소득 수준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전적으로 건강보험에 의지하고 있는 저소득층일수록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적당하다고 인식했다. 실제로 200만원 미만 가구원은 58%가 “적절하다”고 답한 반면 701만원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같은 답이 46% 수준에 그쳤다. 저소득ㆍ저학력층에서 적절하다는 응답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은 이제 건강 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해 치료 단계의 보장성 확대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발병 전 예방 단계부터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모색할 때다.

조사 결과는 또 건강 불평등 인식에 미치는 사회적 인프라와 커뮤니티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일깨워 줬다. 한국사회의 복지제도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여부를 합산 평균한 사회신뢰자본 지수(1~4점)를 만들고, 종친회ㆍ향우회ㆍ시민단체ㆍSNS모임 등 자발적 네트워크 조직 10개 집단에 대한 참여도를 합산 평균한 지수(1~4점)를 비교한 결과, 건강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보는 집단일수록 한국사회에 대한 신뢰 인식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낮았다. 사회신뢰자본의 축적과 공동체 네트워크의 활성화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 김보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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