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공상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당신, 마음속으로는 이미 살인자야.”
악(惡)을 화제로 삼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호기심만 보여도 악당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최대한 거리를 둬야 한다. 아예 입에도 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철저한 ‘타자화’ 전략이다. 그러나 범죄심리학자인 저자는 책 곳곳에서 거듭 환기시킨다. “남 얘기가 아니야. 바로 네 얘기라고!”
“악랄한 범죄들은 일종의 서커스 쇼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악마는 “끔찍한 돌연변이”로 치부된다. 평범한 일상과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드문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무관할까. “나도 툭하면 사람을 죽이고픈 마음이 든다. 공항에서 꾸물거리는 사람을 볼 때면 특히나 그렇다.” 저자는 고백한다. 가능태(可能態)로서의 악은 흔하고, 우리는 모두 잠재적 악마다.
책의 대부분은 현상 분석이다. 과학이 동원된다. 끔찍한 일들을 일으킨 인간 행동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자료가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어야 했는지, 적절한 처벌이 무엇인지 따지는 책이 아니다. ‘당위’는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냥 그 자체일 뿐이다.”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악이라는 꼬리표는 임의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낙인이 남발돼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테러리스트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항의 투사”일 수 있다. 더욱이 악마에게도 사정은 있는 법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다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겪었을 경우 알코올 의존증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자기 또한 분명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으리라는 암시를 반복적으로 받는 바람에 결국 늙은 부친을 살해한 대학강사가 과연 악이기만 한 건지, 저자는 되묻는다.
악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에 오인이 섞여 있기도 하다. 저자는 통념과 달리 살인 공상이 오히려 살인을 막는다는 가설을 소개한다. 사람을 죽인 뒤 일어날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리다 보면, 대부분은 범행으로 일어날 파괴적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게 가설 내용이다. 무모한 사고를 치는 건 거꾸로 살인 공상, 즉 사고 실험을 할 능력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우리 안의 악마
줄리아 쇼 지음ㆍ김성훈 옮김
현암사 발행ㆍ352쪽ㆍ1만7,000원
결국 악마의 출현을 차단하는 방법은 악의 실체와 근원을 더 잘 이해하는 것뿐이다. 낙인ㆍ외면이 능사가 아니다. “문제적인 행동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영향력에 대해 알고 있어야 그 영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도덕을 갖고 있다는 건 인간의 행운이다. “우리는 자신의 도덕성을 외부에 위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과학 다음은 결국 윤리학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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