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사회활동가 샤오치는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선 몸을 가누기 어려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인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굴하는 법이 없다. “내 몸이 무기”라며 온갖 시위와 집회 현장을 바지런히 쫓아 다니며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데 앞장선다.
사랑에도 적극적이다. 신체적 장애가 없는 아내 이팡과 맺어지기까지 구애를 반복했다. 양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일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여전히 험난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커플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나마 나은 것이 ‘막연한 호기심’ 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개는 동정, 혐오, 냉소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건 두 사람이 부부관계를 맺을 때도 집안에 상주하며 샤오치를 돌봐주는 도우미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성적 욕구를 드러내는 걸 죄악시해서다. “장애인은 왜 사랑과 성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되죠? 저는 신체가 손상된 거지, 성적 욕망까지 제거된 건 아니라고요. 우리더러 아이는 어떻게 낳았냐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던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요?”
샤오치의 울분에 찬 항변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론 낯설다. 장애인의 성(性)과 사랑에 대해 지금껏 들어보거나 말해지지 않은 탓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장애인 권리 운동이 전보다 활발해진 것은 분명하다. 이동할 권리, 교육 받을 권리,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공론화 됐고, 장애인 차별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지만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타인과 육체적,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사랑을 나눌 권리에 대해선 우리는 유독 침묵해왔다. 장애인은 무성(無性)의 존재처럼 취급하면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낯선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내밀한 속살을 꺼내놓은 책이다. 세상에 무수한 사랑 이야기 중 아직까지 제대로 터놓고 말하지 못한, 마지막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천자오루는 대만 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던 기자로, 성적 욕망과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장애인들 이야기를 봉인해제 시켰다. 책에는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연인,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등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겼다.
인터뷰에 응한 장애인들은 저마다 어둠 속에 담아놓은 성적 욕망과 쾌락의 말들을 주저 없이 꺼내놓는다. 지체장애인들끼리 관계를 맺는 경우 몸을 지탱해주는 모든 지지대를 풀기까지 준비 과정이 길어 불편하다는 투정, 중증장애인들이 가족과 도우미의 눈을 피해 부랴부랴 스스로 욕구를 해결해왔다는 내밀한 고백도 이어진다.
장애인 또한 사람이다.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사적인 공간에서 서로의 따스한 체온과 숨결, 심장소리, 살갗, 눈빛을 나누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교감을 나눈다.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계단이 사라지고, 완벽한 돌봄과 교육 시스템이 제공된다 해도 누군가의 신체를 만지며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 없다면 삶은 무슨 소용인가요.” 그들의 질문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권리는 모든 인간의 생존방식이다.
하지만 세상은 장애인의 사랑과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장 부모들부터 “잘 먹고 잘 자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한다. 성기를 적출하거나, 단종(斷種)수술을 하는 등 극단적 방법으로 장애인의 재생산권(아이를 낳고 가정을 만들 권리)을 가로 막는 사례도 있다.
여성 장애인은 남성보다 더 위험하다. 부모들은 “아이를 낳아봐야 제대로 키울 수나 있냐. 고통만 커질 뿐”이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걱정이 장애인을 돌봐주는 본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아닌지 되묻는다. 장애인이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고 못 박는 건 사회가 만든 편견이자, 억압이다.
책은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첨예한 쟁점들을 던진다. 중증장애인에게 성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오히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모욕 아닌가. 왜 성 서비스 제공자는 늘 여성이고, 수혜자는 남성인가. 여성 장애인들은 성 서비스를 받는데 왜 주저해야 하는가. 남성 장애인보다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해선 왜 주목하지 않는가.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저자는 직접적 대답보다 자신의 신념 욕망 의지를 드러내는 장애인들 모습으로 보여준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천자오루 지음ㆍ강영희 옮김
사계절 발행ㆍ324쪽ㆍ1만7,000원
분명한 건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빼놓고는 장애인 인권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적 욕망이란 주제를 마주하고 드러내야 비로소 장애인의 삶은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다. 저자는 “성은 그저 양다리 사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 세상과 관계를 맺으려는 갈망”이라 외친다. 한국도 응답해야 할 이야기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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