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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감염병 시국에 법무장관이 벌인 싸움

입력
2020.02.07 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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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내 법무부 대변인실 사무실 '의정관'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내 법무부 대변인실 사무실 '의정관'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온 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피해를 줄이려 안간힘 쓰는 중이다. 정부도 주무부처 관계부처 할 것 없이 방역에 사활을 걸었다. 만에 하나 실패하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고, 나라 경제에도 크나큰 후유증을 남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 얘기할 법무부의 모습은 좀 다르다. ‘출입국 관리’라는 핵심 임무를 맡은 법무부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 대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수장인 추미애 장관만은 난리통에서 멀리 비껴 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중이다. 감염병 발생 이후 추 장관 동선과 발언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관심은 법무부가 지켜야 할 공항ㆍ항만에 가 있는 게 아니라 온통 서초동에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검찰개혁은 중요하고 시급하다. 감염병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더라도, 법무장관은 기본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추 장관이 최근 보인 행보의 문제는 자극적 말을 거듭하며 검찰과 싸움을 이어가느라, 정부 내 반목과 갈등 상황을 스스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싸움이 일상인 정치권마저 정쟁을 자제해야 할 판국이건만, 검찰과 일전을 선포한 추 장관의 전투는 그치지 않았다. 3일 검사 임관식에서 했던 ‘검사동일체’ 발언이 그 예다. 추 장관은 “검사동일체는 법전에서 사라졌음에도 검찰에는 여전히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 깊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들으라고 한 얘기로 보인다. 며칠 전 윤 총장이 지방으로 떠나는 검사들에게 “검사는 어디 가나 검사동일체로 운영되는 조직”이라고 한 말을 겨냥한 것이다. 업무 통일성을 강조한 발언이었지만, 마치 고리타분한 원칙을 고수하는 것처럼 구도를 잡았다. “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고 격노했던 추 장관이 한 달도 안 돼 “상명하복 탈피”를 주문한 것 또한 자기모순이다.

외부 인사인 검찰개혁위원들을 만나선 “(장관에게) 여러 지휘수단이 있음에도 검찰이 아직 실감을 못하는 것 같다”고 뒷말을 했다. 바깥 사람 앞에서 같은 식구 허물을 흉보며, 의도적으로 검찰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읽히기에 무리가 없다.

‘싸움 걸기’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3일 최강욱 비서관에 대한 기소에 “날치기”라는 격한 표현을 썼고, 수사팀 감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28일 최 비서관 기소를 염두에 두고 “합리적 의사 결정이 보장돼야 한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급기야 4일에는 전례 없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공개를 거부하며 또 다른 논란에 불을 댕겼다.

반면 확진자가 한 명이던 지난달 22일 인천공항을 찾은 이후, 확진자가 스무 명이 넘은 지금까지 추 장관의 신종 코로나 관련 행보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장관이 현장을 챙기며 일선 출입국 직원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될 상황이지만, 그는 2주간 검찰과의 싸움에 집중했다.

추 장관이 가시 돋친 말로만 압박하며 일부러 긴장국면을 유지하려는 모습도 적절하지 않다. 검찰에 잘못이 있다면 말로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잘못을 콕 집어 감찰권이나 검찰총장 지휘권 등 법률적 권한을 행사하는 게 맞다.

효율성 면에서도 이런 돌격 일변도 전술은 불필요한 갈등만 일으키며 감정소모만 낳을 뿐,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직진만 거듭 중인 추다르크와 달리, 그 별명 원조인 100년 전쟁의 잔다르크는 오를레앙에서 파리로 곧장 북상하지 않고 절묘한 우회기동을 통해 영국군을 포위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추 장관의 계속된 싸움 걸기는 윤 총장의 ‘체급’만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덕분에 윤 총장은 대권주자 2위권 후보로 부상했다.

얼마 전 이인영 여당 원내대표는 야당을 향해 “정쟁을 중단하고 정치권이 일심동체로 대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맞는 말이다. 법무ㆍ검찰이 한 몸처럼 위기에 맞설 시점에, 불씨에다 자꾸 휘발유를 끼얹는 추 장관도 새겨 볼 얘기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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