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국제금융기구(IMF)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건 1998년~1999년의 일이었다. 아직도 그 시대를 관통했던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월급쟁이 신화의 붕괴의 신호탄이었다. 감봉되고 잘렸다. 그들이 뛰어든 시장이 자영업이었다. IMF사태는 두 가지 심각한 정서적 고통을 남겼다. 파견직을 포함한 계약직 노동자의 등장이 첫째다. 회사가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다른 하나는 자영업이 더 이상 먹고살 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줬다. 두 가지는 흥미롭게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고용시장이 불안하니, 자영업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먹고살 만한 일이 아닌 바로 그 시장으로. 지금 우리가 뜯고 있는 프랜차이즈 배달 치킨은 바로 저 두 가지 변화의 상징인 음식이기도 하다.
딱 십 년 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치료하기도 전에 다시 심대한 타격을 입어야 했다. 이번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시작된 금융공황이었다. 구제금융 당시만큼은 아니었어도 이미 공포를 체험했던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자영업 시장은 다시 폭격을 맞았다. 장사는 안 되는데, 시장 진입자는 더 늘어나는 이상한 악순환이 계속됐다. 적은 파이를 더 많은 이들이 나눠야 했다. 다행히 그 십 년 후 앞서 두 가지 사태만큼 큰 위협은 없었다. 그러나 자영업은 조금씩 더 나빠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시절의 2003년 사스는 엄청난 공포였다. 스페인 독감이 소환됐다. 지금이야 다 지난 일처럼 회자되지만, 당시의 공포는 상상을 넘어섰다. 자영업, 특히 식당이 픽픽 쓰러졌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다시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이어졌다. 심리적 내성이 생기긴 했지만, 자영업 중에서 약한 고리들이 무너졌다. 안 그래도 과당 경쟁에 내몰린 식당들이 주였다. 홍수가 나서 강바닥이 뒤집어지듯, 태풍이 쳐서 바다가 곤두서듯 식당업의 필드는 재편됐다. 그렇게 끈질기게 식당은 먹고살았다. 2015년 메르스는 훨씬 거대한 힘으로 시장을 뒤엎었다. 38명이나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방역 책임자인 정권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다. 텅 빈 예약장부와 그것보다 더 비어 있는 가게를 바라보며 식당업주들은 폐업신고서를 썼다. 당시 식당용 중고기물 취급상의 한마디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물건을 쌓아둘 데가 없어서 더 이상 사들이질 않았어. 나중에는 자리가 모자라 비 맞히면서 야적을 했다가 고물로 팔아 치울 정도였으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많은 자영업자들은 메르스 이상의 충격을 예상하고 있다. 시장상황이 늘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심각한 타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이런 걸 두고 이르는 말이다. 온라인과 배달시장의 활성화, 즉석 식품의 폭발적 증가, 주 52시간 이후 줄어든 회식 같은 외부의 비관적인 변수들이 자영 식당업을 위축시키고 있는 와중에 온 충격이기 때문이다. 식당 하는 사람들은 이미 대략 20%에서 50% 정도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식당은 한 달마다 결산을 하고 월급을 주며, 월세를 낸다. 그래서 ‘한 달 벌어 한 달 먹는 직업’이라고 이른다. 앞으로 2주가 더 지나면 코로나 사태가 한국에 영향을 준 지 한 달여가 된다. 한 달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두 달은 어렵다. 석 달은 불가능하다. 월세와 월급을 줄 수 없게 된다.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안전장치라도 있고, 사회적 시선이라도 받지만 영세한 이 시장은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다. 철거업자들이 무심하게 간판을 떼고, 중고 주방용품을 실어갈 뿐이다.
물론 이번 일은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책임 있는 당국이 대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시장, 취업, 청년, 자영업, 경기를 늘 입에 올리던 이들은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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