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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버려지는 말, 살아나는 말

입력
2020.02.07 04: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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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찌지’라는 말이 나온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기 위하여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전에 ‘찌지’라는 말이 나온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기 위하여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조별 활동과 발표는 요즘 대학에서 흔한 풍경이다. 지식을 나누면서 더 나은 의견을 찾아가는데, 이러한 의견 수렴에 쓰이는 특수 종이가 있다.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접착제가 붙은 메모지이다. 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이 종이의 이름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종종 묻는다. “선생님, 어떻게 써야 맞습니까? 포스트잍, 포스트잇, 포스트-잍, 포스트-잇...”

이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미국의 한 회사에서 만든 ‘post it’을 국어어문규정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설명해도 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이 말은 상품명이다. 새로 등장한 물건이라 우리말 이름이 없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post it’이 한낱 상품명에 불과하다면, 고유명사로 대체하기 전에 이러한 사물을 두루 부를 우리말을 찾아봐야 하지 않았을까?

사전에 ‘찌지’라는 말이 나온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기 위하여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마치 글을 읽던 선비가 어느 곳에다가 임시로 종이를 붙여 놓는 장면이 떠오르는 듯하다. 지금 우리가 떠올리고 있는 그 종이의 쓰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소설에 쓰인 사례 단 하나가 소개될 뿐, 인터넷에서 그 용례조차 검색되지 않는다. 가방 안에, 책상 위에 두고 이를 매일 편하게 쓰면서도 그 이름을 알아보는 것은 불편해 하니 참 모순적이다.

‘미원, 정종, 호치키스’처럼 상표가 이름처럼 쓰이는 예도 있다. 그런데 어느 외국 회사의 상표로 통용되기 전에, 우리말 이름이 있는지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말이란 사람들이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떤 말은 사라지지 않도록, 제발 사람들 눈에 띄기를 바라면서 사전 속에 움츠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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