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뉴구세요?] ‘성전환 여대생’이 소환한 박한희… “수술 안 해도 성별 인정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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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뉴구세요?] ‘성전환 여대생’이 소환한 박한희… “수술 안 해도 성별 인정해줘야”

입력
2020.02.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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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은평구 통일로 서울혁신파크 미래동에서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올해 갓 입학하는 신입생 한 명을 두고 여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신입생 A(22)씨 얘깁니다. 숙명여대 일부 동문은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서울 지역 6개 여대의 21개 단체는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위협한다”며 반발했죠. 논쟁이 커지자 부담감을 느낀 A씨는 결국 7일 입학을 포기했습니다.

한편에선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의 박한희 변호가가 이목을 끌고 있어요. A씨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 변호사를 롤모델로 꼽았기 때문이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답니다. 박 변호사가 이토록 화제를 끈 이유는 그가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이기 때문이에요.

6일 서울 숙명여대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성소수자의 우상? 

A씨는 왜 자신의 롤모델로 박한희 변호사를 꼽았을까요? 법학과에 지원한 그는 “박 변호사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법에 관심이 생겼고, 트랜스젠더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박 변호사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여대 입학을 희망하는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도 밝혔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박 변호사가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도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던 거죠. 박 변호사도 한 매체를 통해 지지의 뜻을 밝혔습니다.

박 변호사는 현재 ‘희망법’에서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SOGI) 인권팀장으로 성소수자들의 인권 보호 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희망법’은 인권침해적이거나 차별적인 법제도와 관행을 바꾸어나가는 비영리 전업 공익인권변호사단체입니다. 소수자의 공익인권소송, 입법ㆍ정책적 개입, 교육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죠.

박한희 변호사. 희망을만드는 법 홈페이지 캡처

 커밍아웃은 언제? 

남성으로 태어난 박 변호사가 커밍아웃을 한 건 2014년 봄입니다. 2013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한지 1년 만에 성 정체성을 공개했죠. 이전까진 남자 중ㆍ고교를 거쳐 포항공대(포스텍) 기계공학과에 다녔고, 건설회사에서도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성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늘 그의 마음 속을 무겁게 짓눌렀죠.

2017년 그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 해부터 ‘희망법’에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의 소신은 197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 분류에서 동성애를 제외한 날을 기념해 2017년 열린 ‘성소수자 혐오 없는 나라를 바라는 시민선언’에서 드러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양한 성적지향 정체성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할 인권이고 국제사회에 확립된 가치 규범”이라며 “왜 2017년 대한민국에선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해야 하나”라고 반문했죠.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 사건에서도 그의 활약은 돋보였습니다. 장신대에서 ‘무지개 퍼포먼스’를 벌인 학생들의 대리인으로 나서 승소를 이끌어 낸 겁니다. 2018년 장신대 학생 8명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옷을 입고 채플(학교 예배)에 참석했다가 징계를 받은 사건이에요. 지난해 학생들이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징계무효확인소송에서 대학이 내린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는 1심 법원 판단이 나왔죠.

그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집행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에 소속으로 지난해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죠.

지난해 8월 은평구 통일로 서울혁신파크 미래동에서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주민번호는 아직도 ‘1’?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2’로 바뀐 A씨와 달리, 박 변호사의 주민번호는 아직도 ‘1’이랍니다.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행 제도로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성별 정정 허가를 해주지 않고 있죠.

박 변호사는 2017년 EBS 토크쇼 ‘까칠남녀’에서 이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트랜스젠더에게 하는 무례한 질문 중 하나가 수술하셨냐는 것”이라며 “난 수술하지 않았고, 앞으로 수술 계획도 없다”고 했어요.

지난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성별 정정 조건으로 성전환수술을 요구하는 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아도 성별 정정을 허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성소수자 수용도 최하위… “성별 정정 관련 법률부터 마련해야”)

2020년이 됐지만, 아직도 한국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심하죠.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한 A씨도 그 벽을 온전히 넘지는 못했습니다. 달라진 점은 있습니다. 최근 A씨와 남성으로 입대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22) 육군 하사가 사회로 나올 수 있었던 건 분명 우연은 아닐 겁니다. 성소수자가 배척되는 분위기에서 자신을 드러낸 박 변호사의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하는 걸까요. 박 변호사의 고군분투는 오늘도 계속 됩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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