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사의 사과와 계약서 전면 수정 약속에도 이상문학상 사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작가들 반발은 여전하고, 이미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상태라 내년 시상도 어렵지 않겠냐는 회의론이 거세다. 이상문학상이란 상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제 문학사상사가 상을 놓아줘야 할 때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난 4일 계약서 전면 수정을 약속한 문학사상사의 입장문이 나온 직후 김금희 작가는 아예 ‘이상문학상 관련해서 내 이름은 후보로라도 거론하지 말라’ 못박았다. 윤이형 작가 역시 “계약과 약속을 줄줄이 파기해 너무 많은 분들께 손해를 끼쳤다”면서도 “선택을 되돌리지 않을 것”이라며 절필 의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이어 5일 이기호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느 문학상이 그런 (출판권) 합의를 요구하는가”라며 “운영을 핑계로 합의를 요구하지 말라”고 호되게 비판했다.
애초 문제가 된 건 저작권이었다. 김금희 작가 등은 수상작품의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조항을 문제 삼았다. 이에 문학사상은 ‘저작권 3년 양도’를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작가들은 이 수정 제안 역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출판권은 수상작이 1년 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아닌 다른 책에는 실릴 수 없다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일컫는다. 이기호 작가 지적처럼 이상문학상의 ‘출판권 1년’ 조항은 이례적이다. 보통 문학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문학상에 ‘출판권’ 조항은 없다. A문학상의 대상을 수상해 수상작품집이 발간됐다 해도, 바로 뒤 B문학상에서 또 다른 상을 받아 별도의 수상작품집에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일은 거의 없다. 계약서에 굳이 넣지 않아도 한 작품을 두고 다른 문학상들이 연달아 대상을 지명하지 않는 건 일종의 관례이기 때문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거기다 최근 문학상 계약은 대부분 작가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며 “출판권 조항을 두는 출판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서 문학사상사는 예외다. 대형 출판사의 경우 문학상은 일종의 투자다. 재능이 보이는 작가에게 문학상을 주고 그 작가와 단행본 계약 체결 등을 이어나가는 방식을 쓴다. 그러니 문학상 작품집 판매 수익에 목을 매지 않는다. 작가에게 나중에 더 좋은 작품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문학사상사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수익만으로 문학상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학사상사가 “1년간 출판권 독점도 명시하지 않으면 사실상 문학상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이유다. 문학사상 임지현 대표는 5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상금 액수도 큰 데다 작품집 판매가 예전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1년간 출판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면 3,500만원의 상금만 작가들에게 주고 끝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임 대표는 그러면서 “문학상으로 떼돈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오랜 전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둘 뿐”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의 재정능력은 충분치 않고, 그렇다고 44년에 걸쳐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잡은 이상문학상을 하루 아침에 없애기에는 독자들의 아쉬움이 큰 상황. 때문에 이상문학상의 이름과 전통은 유지하되 문학사상이 아닌, 다른 운영 주체를 찾는 것은 어떠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사례도 있다. ‘김승옥문학상’의 경우 원래 2013년 KBS순천방송국이 김승옥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2015~2018년 경영상 문제로 중단됐다가 2019년 문학동네가 운영을 맡으며 부활했다. 순천시가 주최하고 운영만 문학동네가 맡는 방식이다. 1997년 백석의 연인 자야 여사 출연금으로 제정된 ‘백석문학상’ 또한 상금은 백석문학기념사업운영위원회가 집행하고 운영은 창비가 맡는 방식을 쓴다.
하지만 이상문학상이 그렇게 될 지는 의문이다. ‘이상문학상이 곧 문학사상사’인 상황에서 문학사상사가 상을 다른 곳에 넘길 리 없다는 것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실제 몇 해전 문학사상이 경영난에 빠졌을 때 매각을 제안 받았는데 이상문학상은 빼고 넘긴다고 해서 거절했던 일이 있다”며 “내년 수상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문학사상사가 이상문학상을 진정 위한다면 대범한 결단을 내릴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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