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들에 지폐(은행권)나 동전(주화)이 아닌 디지털 화폐 연구 바람이 불고 있다. 별도의 연구팀을 꾸린 나라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80%의 중앙은행들이 관련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왔다. 일부 신흥국을 중심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1호’가 등장할 날이 임박했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66개 중앙은행 중 80%가 “열공중”
5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주요국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대응 현황’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BIS) 조사 결과 2019년 들어 전세계 66개국 중앙은행 가운데 80% 이상이 디지털화폐 연구에 돌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는 3년 이내에, 20%는 4~6년 이내에 실제 CBDC 발행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화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촉발했다. 페이스북은 가치 안정을 표방한 ‘리브라’발행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들은 디지털화폐의 기술적 이점에 주목하는 한편 중앙은행의 영향 밖에 있는 화폐가 금융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 등을 우려해 연구에 나서고 있다..
현재 중앙은행들이 연구 중인 디지털화폐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거래 참가자 각자가 거래 내역을 보유하는 분산원장기술을 금융기관 간 거래에 적용하는 거액결제용(wholesale) 디지털화폐다. ‘리브라’처럼 개인이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는 소액결제용(retail) 디지털화폐로 불린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주로 분산원장기술을 적용하는 거액결제용 디지털화폐 개발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의 효율성이 개선되고 운영위험은 감소하는 등의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반면 소액결제용 C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미 전자 지급결제시스템이 마련돼 새로운 결제수단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다는 이유다.
반대로 지급결제시스템이 덜 발전한 신흥국은 개인이 직접 쓸 수 있는 소액결제용 디지털화폐 개발에 적극적이다. 금융망에 대한 개인의 접근성을 확대하고 화폐 발행ㆍ관리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우루과이ㆍ바하마 등은 시범 발행을 마쳤고, 중국과 터키 등도 올해 중으로 시범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소극적이던 한은도 전담조직 꾸려
선진국 가운데서도 소액결제용 디지털화폐 발행에 나선 국가가 없지는 않다. 현금 사용이 급감하고 있는 스웨덴은 올해 중 ‘e-크로나’라는 디지털화폐 시제품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에 경계심을 드러난 유럽연합(EU)도 지난해 말부터 유럽중앙은행(ECB)에 발행 검토를 지시했다.
연구를 위해 여러 나라 중앙은행이 연합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BIS는 지난달 21일 캐나다ㆍ영국ㆍ일본ㆍEUㆍ스웨덴ㆍ스위스 중앙은행과 정보공유포럼을 창설해 CBDC 활용 관련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의 CBDC에 대한 입장은 선진국 중앙은행과 비슷하다. 한국의 지급결제시스템이 잘 갖춰진 편이라 CBDC 발행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각국이 디지털화폐 발행 연구에 적극 나서자, 한은도 ‘디지털화폐연구팀 및 기술반’이라는 전담 조직을 마련하고 법적 문제 검토와 기술 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한은은 “각국 CBDC 연구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발행 환경과 인센티브 등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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