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중국인 유학생 9명이 털어놓은 ‘신종 코로나’ 그 후
박원순 시장과 4일 간담회… “우리가 퇴치해야 할 것은 혐오 바이러스”
“지하철에서 중국어로 핸드폰 문자를 하거나 중국어로 얘기하면 (한국 승객들이) 눈치를 줘요.”
4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생활관. 한국일보와 만난 중국인 유학생 왕경휘씨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이후 그가 겪은 ‘차별’ 얘기를 꺼내며 한숨 먼저 내쉬었다. 어깨는 축 처졌고, 속상한 듯 미간이 찌푸려졌다. 신종 코로나 확산 후 중국인을 바라보는 따가운 눈총에 마음고생이 심한 듯 했다. 대학 캠퍼스도 그에게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왕씨는 “온라인에서 ‘중국인 학생과 기숙사 쓰는 게 부담스럽다’ ‘중국인과 같이 있기 싫다’는 글을 봐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춘제(春節ㆍ중국의 설) 기간 고향에 가지 않고 서울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중국인이란 이유로 받는 차별적 시선이 억울할 뿐이다.
이처럼 중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9명의 유학생들은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고충을 토로했다. 대중교통을 타며 겪는 혐오적 시선에 관한 얘기가 많았다. 구서경씨는 “버스를 타면 눈치를 준다”며 “마스크를 안 쓴 적이 있는데 마스크를 나처럼 안 쓴 (한국)승객이 눈치를 주더라”고 황당해했다. 개강 후 학교 생활에 대한 걱정도 가득했다. 강신씨는 “신종 코로나로 학기 중에 팀워크 과제를 하면 차별 받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중국인 유학생이란 이유로 다른 학생들이 그를 조별 과제 멤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중국인을 싸잡아 ‘박쥐를 먹는 야만인’으로 몰아 붙이는 폭력적 시선에 이들의 마음에도 ‘멍’이 들었다. 왕가남씨는 “이번 사태로 중국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먹는다는 걸 보고 나도 놀랐다”며 “많은 중국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먹는 게 아닌데 중국사람 욕하는 댓글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자리에선 “‘우한 폐렴’이란 말을 쓰지 말아달라”는 호소도 나왔다. 특정 지역명과 감염병을 관련지어 중국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찍지 말아달라는 얘기였다. “한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다”고 꼬집는 학생도 있었다. 대부분 중국인 유학생들은 ‘마스크 대란’으로 국내에서 위생품 구매가 어려운 현실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들의 고충을 들은 박원순 시장은 “중국인 유학생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분들”이라며 “지금 우리가 퇴치해야 할 것은 신종 코로나와 함께 ‘혐오 바이러스’이고 서울시와 대학 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유학생들을 다독였다.
국가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대학학위과정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은 3만 7,257명이다. 어학연수생까지 합하면 약 7만명에 달한다. 중국인 유학생 관리에 대학뿐 아니라 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는 서울시립대와 협의해 개강에 맞춰 중국에서 돌아오는 중국 유학생들을 별도의 기숙사에 2주간 머물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이상 증세가 없는 게 확인되면 캠퍼스로 돌려 보낸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립대는 개강 2주 연기를 논의중이다. 시립대에 따르면 대학 내 중국인 유학생은 285명으로, 이중 145명이 방학기간 중국을 방문했다. 최근 입국한 중국인 36명을 모니터링한 결과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시가 밝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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