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문 대통령 영입으로 정치권 들어온 신인들
절반 가량은 국회 입성… 정부 입각ㆍ와신상담도
핸드볼 선수, 소방관, 환경전문 변호사, 판사,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 활동가.
4ㆍ15 총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의 면면입니다. 4일까지 총 16명의 영입인재를 발표한 민주당은 시작부터 박찬주 육군대장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자유한국당과의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거대 정당들의 정치신인 영입경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1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시작으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까지 21명의 인물을 영입(공식 입당선언 기준)했어요. 당 영입인재를 ‘1호’ ‘2호’ ‘3호’ 이런 식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문 대통령이 처음이라 이들은 ‘문재인 키즈’라고 불리며 큰 관심을 모았어요.
올해 민주당 영입인재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정치권에 들어왔던 문재인 키즈. 과연 이들은 다음 총선이 다가온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문재인 키즈의 ‘오늘’을 통해 이번 영입인재들의 ‘내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다들 ‘금배지’는 달았나?
총선을 앞두고 당에 들어왔으니 영입인재들의 성적표는 우선 선거의 성과로 보는 것이 맞겠죠. 20대 총선에서 문재인 키즈들은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10명이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4명의 비례대표(권미혁ㆍ문미옥ㆍ이수혁ㆍ이철희, 이수혁 의원은 선거 뒤 비례대표 승계를 통해 금배지를 달았음)를 포함해서요. 표창원(경기 용인정) 의원은 물론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 내내 상대 후보에 밀렸던 김병관(경기 성남분당갑), 조응천(경기 남양주갑), 김병기(서울 동작갑), 박주민(서울 은평갑), 김정우(경기 군포갑) 의원 등도 당당히 생환해 주목을 받았죠.
그렇다면 나머지 인재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고졸 신화’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는 거물급 정치인 천정배 당시 국민의당 의원과 광주 서을에서 맞붙어 고배를 마셨습니다. 하정열(전북 정읍) 전 한국안보통일연구원장과 박희승(전북 남원·임실·순창) 전 판사도 호남에 출마했다가 국민의당 돌풍으로 줄줄이 낙선했죠. 부산 해운대갑에 출마한 유영민 전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도 당시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에게 밀리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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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은 다들 뭐 하는데?
정치를 꼭 의원이 돼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서 활약한 이들도 있어요. 유영민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첫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됐죠. 여성 과학기술 인재로 손꼽히는 문미옥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려놓고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청와대행을 택했고 이후 과기부 1차관으로 옮겼습니다.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해내야 할 시기”라며 문 의원의 발탁 이유를 밝히기도 했죠. 이수혁 의원도 지난해 10월 주미대사로 부임했어요.
올해 총선을 앞두고 ‘와신상담’에 나선 이들도 있습니다. 인재영입 6호였던 디자이너 출신 김빈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 행정관은 당내 30대 인재(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 장경태 전국청년위원장, 장철민 전 원내대표 정책조정실장)들과 함께 4ㆍ15 총선 도전장을 냈습니다. 양향자 전 상무와 오기형 변호사(서울 도봉을), 박희승 변호사도 지난 총선과 같은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 중입니다.
◇괜히 망신당한 사람도 있었다며?
선거에서 유리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인재영입이지만, 오히려 이들이 ‘역풍’의 원인 제공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다가 영입 이후 과거 논란이 불거진 사례죠. 당장 민주당의 21대 총선 영입인재 2호였던 청년 원종건씨는 과거 연인이었던 여성이 제기한 데이트 폭력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총선에 불출마하기로 했죠. 이어 영입인재라는 자격까지 당에 반납했어요. 다만 “분별없이 살지는 않았다”고 관련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죠.관련 기사: 민주당 ‘원종건 후폭풍’… 한국당 “人災 된 깜짝 인재 영입”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키즈 중 여성으로는 첫 영입이었던 트라우마 전문가 김선현 교수도 영입인재 자격을 자진 반납했는데요, 논문표절 및 갑질 등 여러 의혹에 휘말리자 “나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며 “이제 개인으로 돌아가 저의 명예를 지킬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뒤 국회를 떠났어요.
◇다들 “정치 바꿀 것”이라고 했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영입인재들이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켰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이들이 몸 담았던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1호 영입인사로 국회에 들어왔던 표창원 의원을 비롯해 이철희 의원은 초선을 끝으로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어요. 표 의원은 “사상 최악 20대 국회의 책임을 지겠다”며 “저는 제가 질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의 방식으로 참회하겠다”고 밝혔죠.관련 기사: 표창원 “지옥 같았다” 이철희 이어 불출마… 짐싸는 스타 초선들
총선을 향해 신발끈을 묶고 있을 21대 영입인재들은 어떨까요. 민주당은 20명 안팎의 외부인재를 당에 들일 것이라 예고하기도 했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들을 ‘일회용 추잉껌’에 비유하며 “유통기한은 정확히 단물이 다 빨릴 때까지”라고 평가절하했는데요.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이들 영입인재들이 금방 단물이 빠지는 껌이 아니라 우릴수록 깊은 맛이 나는 차(茶) 같은 정치인이 되길 바랍니다.
☞여기서 잠깐
정치권 인재영입 경쟁의 ‘원조’는 누구?
정치인보다는 경제인으로 더 익숙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치권 인재영입 경쟁을 시작한 장본인이란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정 전 회장은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며 최불암ㆍ이주일ㆍ강부자 등 유명 연예인을 영입했죠.
본격적인 정당 간 인재영입 경쟁이 불붙은 건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여당에선 신한국당의 김영삼 대통령, 야당에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당시 총재가 직접 공천 전권을 쥐고 약점을 보완할 외부 인사 영입에 열을 올렸습니다. 신한국당은 각각 이재오ㆍ김문수ㆍ이우재 등 재야 운동권 인사 영입을 시작으로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등을 영입했고, 야당은 정동영 MBC 앵커, 추미애 판사, 천정배 변호사 영입 등으로 맞섰죠.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30대의 우상호, 임종석, 이인영 등을 파격적으로 영입해 이른바 ‘386세대’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이슈레터’가 마음에 드셨다면 <뉴:잼>을 구독해보세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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