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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신종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입력
2020.02.04 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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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신종 코로나비이러스 감염증인 '우한폐렴' 국내 확진자가 15명으로 늘어난 2일 서울 명동거리가 주말 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신종 코로나비이러스 감염증인 '우한폐렴' 국내 확진자가 15명으로 늘어난 2일 서울 명동거리가 주말 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지난 설 연휴 기간 독감에 걸렸다. 연휴 첫날부터 열이 오르며 근육통과 두통에 온몸이 괴로웠다. 문을 연 병원을 찾기 어려워 설 다음날에야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오전 시간이었지만 어두운 표정의 환자들이 20명 넘게 대기해, 서있을 공간도 부족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는 내 안색만 보고도 독감을 의심했다. 검사 키트로 검사를 하고 독감 진단을 받자마자 병원에서는 마스크를 씌워줬다. 주사를 맞은 이후에도 이틀 이상 ‘자가격리’할 것과 절대 마스크를 벗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도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던 시기에 독감에 걸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 신종 코로나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서로 예민하게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상호 조심하려는 것이지만 가려진 입과 경계하는 눈빛은 왠지 모를 우울감을 불러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과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상황은 사람 사이를 가르고 나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통해 신종 코로나의 근원지로 지목된 중국 우한의 모습과 상황을 종종 접할 수 있다. 잿빛 도시에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우연히 거리에서 사람과 마주쳐도 서로 애써 외면하며 되도록 멀리 떨어져 지나친다. 우한의 모습은 바이러스가 더 넓게 퍼진다면 서울 시내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경계하며 피하는 상호 혐오와 배제가 보편화한 세상, 가짜뉴스와 차별, 그로 인한 혼란에 빠진 세상을 상상하니 갑자기 공포감이 몰려왔다.

최근 9년전 개봉된 영화 ‘컨테이젼’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상황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에서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박쥐가 지목돼 놀랍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전염병의 확산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공포에 주목했다. 바이러스보다 사재기가 횡행하고 가짜뉴스가 창궐해 혼란에 빠져 악화되어가는 세상의 모습을 감독은 더 주목해 보여줬다.

혐오는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퍼진다. 유럽에선 중국과 한국을 구분하지 않고 동양인 모두를 혐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의 한 지역 신문사는 1면에 ‘황색 경계령’(Yellow Alert)이라고 쓰며 인종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탈리아의 한 음악대학에서는 아시아계 학생들의 수업 출석을 강제로 금지해 논란이 일었다.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는 것인데, 한국을 포함한 모든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수업에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이 학교엔 아시아계 유학생 중 중국보다 한국 학생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 있는 아시아인들은 SNS에서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달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약자는 늘 약자를 혐오한다. 이런 소식을 전한 온라인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유럽인들의 혐오에 대한 반감이나 역지사지의 반성이 아니라 중국 때문에 우리가 혐오 대상이 됐다는 원망이 대부분이다. 강자의 혐오 논리에 동조하기까지 한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를 부추긴다. 하지만 막연한 공포와 혐오는 질병의 확산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연휴기간 걸린 독감이 실은 2009년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신종플루’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다행히 이젠 백신을 통해 손쉽게 치료와 예방이 가능해져 독감이 유행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언젠가는 백신이 개발되고 예방ㆍ치료될 것이다. 현재도 접촉이 없으면 전염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접촉 없이도 급속도로 퍼지는 혐오 바이러스는 막을 방법도 없고, 뚜렷한 치료 백신도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강희경 영상콘텐츠팀장 kst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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