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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이제 박정희와 작별하자!

입력
2020.02.03 18:00
수정
2020.02.03 18:0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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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은 허물만큼이나 공도 큰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20세기의 인물이었고 게다가 독재적 정치인이었다. 박정희가 부활하여 재림한다면 우리 경제가 화산 폭발하듯 다시 초고속성장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시대착오고 퇴행이다. 사진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경북 구미시 상문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허물만큼이나 공도 큰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20세기의 인물이었고 게다가 독재적 정치인이었다. 박정희가 부활하여 재림한다면 우리 경제가 화산 폭발하듯 다시 초고속성장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시대착오고 퇴행이다. 사진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경북 구미시 상문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존경할 인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마다 존경하고 흠숭하는 대상이 다르다. 그 대상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이 아니라면 그걸 시비하고 탓할 일이 없다. 하지만 절대적 존재나 완벽한 인격으로 인식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때로는 그의 허물을 객관적으로 알면서도 스스로 인지부조화로 자신을 유도하고 급기야 확증 편향에 빠져 거의 교주처럼 받드는 경우도 있다. 그쯤이면 우상 숭배다.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와 다를 바 없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오로지 선이나 악의 측면만 지닌 사람은 없다. 어떤 면을 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이 다른 건 그 때문이다. 부하들 잘 건사하고 의리를 지키는 조폭 두목이라면 조직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다. 반면 그의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저승사자와 같다. 공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공과 과가 혼재한다. 공이 더 큰지 허물이 더 무거운지는 당대와 후대의 평가가 일관될 수도 있고 변화할 수도 있다. 그게 세상이고 삶이며 사람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공과 과가 뚜렷한 인물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쿠데타로 집권했고 철권 통치를 휘둘렀으며 삼선개헌도 모자라 종신 집권을 꿈꾼 유신쿠데타의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억압되고 정의는 짓밟혔으며 인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검찰은 아예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도록 길들였고 사법부까지 농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당면한 검찰 개혁과 사법 농단 청산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한다. 박정희는 조금이라도 불편한 보도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언론에 재갈을 물려 응징했다. 동아일보 광고 탄압은 그 극치였다. 거기에 저항한 기자들은 모두 쫓겨났다. 그리고 그 신문은 지금 보수 언론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10월유신으로도 모자라 긴급조치를 마구 쏟아냈다.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철권을 휘둘렀다.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이 없었다면 어디까지 갔을까? 지울 수 없는 허물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허물만 있다면 여전히 그에 대한 향수를 지닌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걸 설명할 수 없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가 없었어도 산업화는 저절로 이루어졌을 거라는 푸념은 무능한 자들의 변명으로 들린다. 그게 현실이다. 그 엄연한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굶주림과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것이다. 물론 높은 교육수준이 만들어낸 질 좋은 노동력의 저렴한 인건비가 큰 경쟁력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지만 박정희의 강력한 통치력(정치가 아니라)과 경제 개발의 청사진은 분명 대한민국이 산업국가로 전환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1963년 개인소득 100달러도 채 되지 않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30년 만에 OECD에 가입한 기적의 토대가 그의 시대에 만들어진 건 부인할 수 없다. 그 점에서 박정희는 분명 공이 큰 인물이다.

그 공이 경제였기에 경제가 조금만 흔들려도 박정희를 추억하고 소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만도 하다. 매년 10% 전후의 엄청난 성장률을 보인 시대를 살았으니. 지금은 고작 2~3%도 겨우 깔딱거리는 걸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그렇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초고속경제발전 시대가 무한히 지속되는 게 아니다. 저성장은 선진국의 보편적 현상이다. 지속 가능성이 문제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그때는 말이지~” 운운하며 지금의 미지근한 성장을 불평한다. 그럴수록 그의 소환은 더 강해진다. 그것은 일종의 욕망이다. 더 잘살고 싶다는. 그 욕망의 투사(projection)가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게 했다. 단지 그의 딸이라는 포장된 이미지만으로. 그러나 그녀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무능과 무공감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쫓겨났다. 그래도 아직 아버지의 후광이 그녀를 지키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허물만큼이나 공도 큰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20세기의 인물이었고 게다가 독재적 정치인이었다. 박정희가 부활하여 재림한다면 우리 경제가 화산 폭발하듯 다시 초고속성장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시대착오고 퇴행이다. 지금은 오히려 그런 사고와 언행 그리고 판단이 걸림돌이 되는 세상이다. 한 개인의 강력한 철권적 리더십은 조직 전체를 망친다. 거기에 대한 향수는 위험한 일이다. 이제 박정희와 작별해야 한다.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도 떠나 보내야 한다. 그와 함께 과거를 살면 미래는 재앙이다. 그의 정치력이 통했던 시대도 끝났다. 그의 결단력이 경제를 이끌었던 시대도 끝났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미련과 향수를 지니고 있다면 위험한 일이다. 정치인들부터 박정희를 소환하려는 꼼수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우리의 몫이다. TK조차도 박정희와 이제는 작별해야 한다. 어리석게 소환한 박정희는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다. 정말 박정희를 사랑한다면 이제 마음속으로만 존경하고 입 밖으로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향수는 향수에 그쳐야 한다. 정말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가?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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