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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을 가다] 원자로 근처에 오염수 탱크 1000개 빼곡... 어민들도 해양 방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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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을 가다] 원자로 근처에 오염수 탱크 1000개 빼곡... 어민들도 해양 방류 반대

입력
2020.02.03 04:30
수정
2020.02.03 07:5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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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오염수를 보관 중인 대형 저장탱크들이 세워져 있다. 후쿠시마=EPA 제공
1월 2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오염수를 보관 중인 대형 저장탱크들이 세워져 있다. 후쿠시마=EPA 제공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전문가 소위원회는 지난달 31일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처리 방식과 관련해 해양 방류가 대기 방출에 비해 방사성 물질 감시 등의 측면에서 훨씬 확실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경산성은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약 3년 간 검토돼 온 오염수 처리 방식을 △물에 희석한 뒤 해양 방류 △증발시켜 대기 방출 △두 가지 병행 등 3가지로 압축한 바 있다. 국내외 우려에도 환경 방출을 전제한 데 이어 사실상 해양 방류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여기에 6개월 앞둔 도쿄올림픽의 야구 등 일부 종목이 원전에서 60㎞ 떨어진 경기장에서 진행되고,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선수단 음식에 제공될 것으로 알려져 원전 안전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시간이 멈춘 후쿠시마 원전

지난달 22일 후쿠시마현 도미오카(富岡)마을의 도쿄전력 폐로자료관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 곳은 원전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져 있는데, 도쿄전력이 제공한 버스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스마트폰 등 촬영 가능한 물건은 두고 내려야 했다. 사진과 영상촬영은 사전 등록된 각 1명에게 허용됐다. 원전에 도착할 때까지 10여분 동안 차창에 펼쳐진 풍경은 9년 전 폭발사고 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도로 주변 편의점, 주유소 등 건물은 빛 바랜 간판을 그대로 둔 채 폐쇄됐고, ‘귀환곤란구역’이라고 쓰여진 표시와 함께 일반인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줄지어 있었다.

도쿄전력 건물에 들어서자 취재진에게 개인용 방사선량 측정기를 넣을 수 있는 조끼와 부직포로 된 모자, 마스크, 장갑, 양말 두 켤레가 지급됐다. 건물 밖으로 나서려면 헬멧과 방재장화를 착용해야 한다. 도쿄전력 측은 원자로 주변에서 장시간 작업을 하는 경우 얼굴 전면을 덮는 마스크와 전신 방호복을 입지만, 현재 원전 부지의 96%는 전신 방재복 등 없이도 다닐 수 있는 ‘그린존’이라고 강조했다.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이동해 폭발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원자로 1~4호기 근처로 다가섰다.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원자로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기자가 서 있던 장소는 해발 35m였다. 냉각수를 바다에서 쉽게 끌어다 쓰기 위해 해안에 인접한 부분을 25m 깎아내고 원자로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하수가 원자로 안으로 유입되기 쉽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한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도쿄전력 관계자는 “2018년 11월부터 이 곳까지는 전신 방호복과 마스크 착용 없이 (단시간) 접근이 허용되고 있다”며 “지난해에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환경장관이 시찰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꾸준한 제염 작업을 통해 원전 주변 작업 환경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설명이었다.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1월 2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오염수를 담은 병의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다. 후쿠시마=EPA 제공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1월 2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오염수를 담은 병의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다. 후쿠시마=EPA 제공

◇日 정부는 안전보다 소문 우려해

원자로 1~4호의 남ㆍ서쪽 부지엔 오염수가 담긴 1,000개의 대형 저장탱크가 늘어서 있었다. 도쿄전력은 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세슘 흡착과 다핵종제거설비(ALPS), 이중단계를 거쳐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다. 저장탱크에는 이 과정을 거친 오염수가 보관돼 있는데 지난달 23일 기준 118만톤에 달하고 원전에선 매일 170톤의 오염수가 새로 나오는 중이다. 저장탱크를 증설하고 있다고는 하나 2022년 여름이면 포화상태(137만톤)에 이를 예정이다. 탱크를 지을 부지도 더 없어 일본 정부가 환경 방출 결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도쿄전력은 세슘 흡착 등을 거치면 삼중수소(트리튬)는 남아 있지만 여타 인체에 유해한 방사성 물질은 기준치 이하로 걸러진다고 주장했다. 삼중수소를 물로 한번 더 희석해 기준치인 ℓ당 6만베크렐(㏃) 이하로 낮춰 바다로 흘려 보내면 안전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 원전에서 삼중수소가 배출되고 있는 점도 강조했다

도쿄전력 측은 지난해 10월 29일 ALPS를 통과한 오염수를 담은 물병과 건물 주변의 공기 방사선량을 비교해 보이기까지 했다. 방사선 측정기를 물병에 가져가자 시간당 0.55마이크로시버트(μ㏜)를 가리켰고, 원전 부지 내 공기 방사선량은 시간당 0.5마이크로시버트였다. 제염 목표치인 시간당 0.23마이크로시버트보다는 물론 높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설명에도 2018년 9월 저장탱크에 보관된 오염수의 80% 이상에서 세슘과 스트론튬 등의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상 확인돼 안전 우려는 여전하다. 또 정상 원전과 폭발사고가 발생한 원전에서 배출되는 삼중수소는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다고 다수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취재진의 질문도 오염수 안전성과 처리 방법 결정 시기에 집중됐다. 이에 기노 마사토(木野正登) 경산성 자원에너지청 참사관은 “ALPS 처리수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관련 데이터가 있어 과학적인 안전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다만 ‘풍평피해(風評被害ㆍ소문으로 인한 피해)’가 생길 수 있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결정 시기에 대해선 “어업 종사자 등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할 방침이지만 시기는 미정”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1월 22일 후쿠시마현 오나하마 어시장에서 어민들이 잡은 생선들이 어종별로 정리돼 있다. 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1월 22일 후쿠시마현 오나하마 어시장에서 어민들이 잡은 생선들이 어종별로 정리돼 있다. 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어민들도 ‘해양 방류’ 반대

오염수 해양 방류는 후쿠시마현 어민들도 반발하는 방식이다. 22일 오전 오나하마(小名浜)항 어시장에서는 당일 새벽에 잡은 생선들이 속속 들어왔다. 이 곳에서는 어민들이 출하에 앞서 어종별로 방사능 자주(自主)검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마에다 히사시(前田久) 오하나마저인망어업협동조합 차장은 “국가 기준치(㎏당 100베크렐)보다 강화해 ㎏당 25베크렐이 넘는 방사능이 검출될 경우 현에 정밀검사를 맡긴다”며 “거기서도 50베크렐 이하일 때만 출하한다”고 강조했다. 가미야마 교이치(神山享一) 후쿠시마현 해양연구센터 방사능연구부장은 “2015년 4월 이후 국가 기준치를 넘는 생선이 한 마리도 없었다”면서도 “다만 해양 방류 시 풍평피해의 형태로 소비자들이 후쿠시마산 생선을 먹는 것을 꺼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어업 관계자 사이에선 시험조업과 이중 방사능 검사를 통해 사고 이전의 15.5% 수준이나마 어획량을 회복한 노력이 해양 방류로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농산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농림수산성 조사에 따르면, 도쿄도 중앙도매시장에서 후쿠시마산 쇠고기 가격은 사고 직후 전국 평균 보다 26.3% 저렴했고 2017년에도 7.2% 싸게 유통되고 있다.

다음달이면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 도미오카마을과 후타바(双葉)마을, 오쿠마(小熊)마을 3곳의 일부가 귀환곤란지역에서 해제된다. 그러나 부흥청과 후쿠시마현의 공동 조사 결과 원주민의 64%는 귀환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환경과 생활용수 안전 등이 불안한 탓이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처리 방식 결정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가운데 주변국은 물론, 이런 주민들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였다.

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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