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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카슈미르 반군 간부와 함께 잡힌 印 경찰 간부… 그의 정체는?

입력
2020.02.22 06: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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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제헌절 ‘공화국의 날’인 1월 26일 무장한 인도군이 카슈미르지역 스리나가르의 문닫힌 시장 인근에서 순찰하고 있다. 스리나가르=AP 연합뉴스
인도의 제헌절 ‘공화국의 날’인 1월 26일 무장한 인도군이 카슈미르지역 스리나가르의 문닫힌 시장 인근에서 순찰하고 있다. 스리나가르=AP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인도 최북단에 위치한 카슈미르 남부 소피안지구를 출발한 차량 한 대가 잠무지역으로 향하다 이웃한 쿨감지구 44번 국도 검문소에서 멈춰 섰다. 차량에 탄 네 명의 남성들은 검문소에 일시 구금된 뒤 이내 정식 체포됐다. 인도의 제헌절 격인 ‘공화국의 날(1월 26일)’을 보름 앞둔 때였다.

네 명의 구성은 가히 흥미롭다. 두 명(사이드 나비드 무슈타크, 라피 아흐메드 라터)은 카슈미르에서 가장 활발한 무장단체 히즈볼 무자히딘(히즈볼) 대원으로 알려졌다. 특히 나비드는 2017년 잠무카슈미르 특수경찰(SPO)직에서 탈영했던 인물이다. 나비드는 이제 히즈볼 ‘고위 사령관’으로 통한다. 악명도 자자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29일 남부 쿨감지구에서 사과 수확철을 맞아 카슈미르에 와 있던 외지인 11명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었다. 세 번째 인물은 변호사 이르판 샤피다. 수사당국은 그가 이른바 ‘오버그라운드 워커(OGW)’라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민간인이지만 무장단체들의 활동을 은밀히 돕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인물은 다빈더 싱 잠무 카슈미르 경찰 부경정이다. 무장단체 대원들과 같이 이동하다 경찰 간부가 검문에 걸렸다는 사실은 이들 4명의 관계에 대한 심상치 않은 물음을 끝없이 야기하고 있다. 싱의 이력과 굵직한 행적 몇 개만 봐도 그는 인도령 카슈미르 무장 분쟁의 어두운 네트워크에 연루됐음을 부인키 어려워 보인다. 싱, 그는 ‘이중첩자’인가 아니면 돈에 눈 먼 ‘타락한 빌런’인가.

싱은 카슈미르 남부 풀와마지구 트랄지역의 과수원집 아들로 알려졌다. 카슈미르 주류인 무슬림이 아닌 시크 커뮤니티 출신인 싱은 1990년 경찰에 입문했다. 카슈미르 근대사의 첫 무장투쟁조직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JKLF)’이 생겨난 이듬해로 분쟁ㆍ폭력이 가속도를 밟기 시작할 때다. JKLF가 무기를 내려놓고 비폭력 정치투쟁으로 노선을 변경할 즈음인 1994년 인도는 대(對)반군 작전의 일환으로 특수경찰그룹(SOG)을 창설했다. SOG는 엄밀히 따지면 정식경찰이 아니지만 경찰조직과 대반군 공동작전으로 협조하는 관계다. 싱은 작전을 총괄하는 SOG 간부급으로 10여년을 보냈다. 지난달 9일 인도 정부가 델리 주재 외교관들에게 ‘정상화된 카슈미르’를 보여주겠다며 카슈미르 투어를 조직했을 때 외교방문단을 공항에서 맞이한 이도 다름아닌 싱이었다.

다빈더 싱 부경정이 돈을 받고 카슈미르 무장단체를 도와줬다는 내용이 담긴 인도 일간 더힌두의 기사. 더힌두 캡처
다빈더 싱 부경정이 돈을 받고 카슈미르 무장단체를 도와줬다는 내용이 담긴 인도 일간 더힌두의 기사. 더힌두 캡처

이런 가운데 지난달 26일 인도 일간 ‘더 힌두’는 싱 부경정이 지난해에도 나비드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월 19일 그는 자신의 자가용으로 나비드를 7시간이 걸리는 잠무까지 데려다줬고, 스리나가르로 되돌아오는 길엔 나비드의 동생 이르판 샤에게 전화를 걸어 리턴 티켓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해당 보도는 싱의 이 모든 행적이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익명의 정부 관계자도 인용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싱은 직업윤리를 전면 상실한 타락한 경찰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가 인도의 막강한 권력기구이자 해외정보 담당 기관인 ‘조사분석국(RAW)’과도 보고관계를 유지해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도 ‘News 18’은 지난달 23일자 보도에서 정보기관과 경찰 취재원을 인용해 “RAW가 싱을 히즈볼 침투작전에 이용했다”고 전했다.

싱 논란의 정점을 찍는 사건은 단연 2001년 발생한 ‘델리 의사당 공격’일 것이다. 그 해 12월 13일 벌어진 의사당 공격은 재판과정에서 진실 규명보다는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10여년간 관련 재판이 이슈화될 때마다 카슈미르는 물론 델리에서도 시위를 촉발할 만큼 덩치가 큰 사건이다. AK47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라슈카레 토이바(LeT)와 자이쉐 모하메드(JeM) 조직원 5명이 파키스탄 정보국 ISI의 지시를 받고 수행한 테러라는 게 당시 인도 수사당국의 발표였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돼 대법원 항소심에서 사형을 확정받은 모하메드 아프잘 구루는 2006년 자신의 변호사 수실 쿠마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건 이면의 중요한 배경 사실들을 기술했다. 의사당 공격에 직접 가담한 파키스탄인 ‘무함마드’를 카슈미르에서 델리로 안내하고 그의 델리 체류를 도우라고 지시한 인물이 다름아닌 싱이었다는 것이다. “사소한 일 하나 도와달라”는 싱의 말에 아프잘이 움직였고, 그 결과 아프잘은 의사당 테러 공격 모의에 가담한 ‘테러리스트’가 됐다는 것이다. 싱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정황 증거’들은 그러나 재판에서 깡그리 무시됐다.

지난해 10월 11일 인도가 카슈미르지역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하자 한 스리나가르 시민이 철조망을 머리에 감고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스리나가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1일 인도가 카슈미르지역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하자 한 스리나가르 시민이 철조망을 머리에 감고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스리나가르=로이터 연합뉴스

아프잘은 투항한 반군 출신이다. 1990년대 초 의대생이었던 그는 무장분쟁의 소용돌이가 시작되던 당시 JKLF 대원으로 여느 카슈미르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인도와 파키스탄을 가르는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1993년께 돌아온 그가 선택한 건 무장투쟁이 아니라 평범한 의대생이었다. 하지만 보안군은 투항반군 아프잘을 가만두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어느 아침 그는 거리에서 특수경찰부대(STF) 대원들에게 납치되듯 끌려갔다. 끌려간 파이할란 캠프에서 전기고문, 고춧가루와 경유를 섞은 물고문 등을 당하며 그와 가족의 안전 및 목숨값으로 뇌물 100만루피를 요구받았다. 당시 그를 고문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또한 싱이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에서 투항반군이 경찰 간부의 “사소한 일 하나 도와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된다.

2013년 2월 9일 오전 8시 아프잘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집행 사실은 가족들에게 사전에 통보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종교의식이라도 치르고 싶다는 가족들에게 교정당국은 시신조차 인계하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델리 티하르 감옥 마당에 묻혀 있다. 거대한 음모의 한 토막 같은 아프잘 사례가 이제 싱이라는 인물의 정체를 뒤늦게나마 세상에 드러내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빛을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경찰 출신 반군 사령관과 반군대원, 민간인으로 이들을 돕던 변호사, 그리고 투항반군을 고문하는 동시에 의사당 공격 같은 심각한 ‘반국가 테러’ 사전작업에 관여한 경찰 간부. 이 네 사람의 관계와 이들이 잠무를 거쳐 향하고자 했던 최종 목적지, 임무는 무엇이었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싱은 지금 ‘무장단체 대원’으로 간주된 채 테러수사를 전담하는 국가조사국(NIA)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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