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다양한 파스타 면과 소스, 조리법이 국내에도 소개돼 계절에 맞춰 다양하게 파스타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따뜻한 파스타를 처음 만든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생토마토 통조림 같은 건 없었고 생각조차 못했다. 진녹색 바탕에 빨간 토마토와 하얀 양송이가 두드러지는 딱지의 병조림 소스가 전부였다. 그전까지 기껏 라면이나 끓여 먹었던지라 진짜 고기를 사다가 조리할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그저 만만한 스팸을 대강 잘게 다져 소스에 쏟아 붓고 적당히 끓이면 당시의 기준으로 그냥 저냥 먹을 수 있었다. 이전 세대의 파스타가 ‘스파게티’라는 이름의 인스턴트 라면(케첩에 면을 비비는 일본의 나폴리탄 스파게티와 비슷한)이었음을 감안하면 스무살짜리에게는 가히 업그레이드라 할 만했다. 

그렇게 소스는 일단 통과했는데, 면이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양 조절이 골칫거리였다. 대체 얼마만큼을 넣어야 맞는지 감을 도통 잡을 수 없었다. 물론 저울은 없었으며 심지어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려 그 안에 면을 채우면 1인분’이라는 대강의 기준조차 몰랐다. 결국 한 봉지의 절반 정도를 삶았더니 지름 20㎝가 넘는 접시에 넘칠 정도로 쌓일 만큼 많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가 김을 무럭무럭 올리며 위용을 자랑하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지금이야 배가 적당히 부르면 숟가락을 놓지만 밥을 남기면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굶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꾸지람을 듣던 시절이었다. 결국 스파게티를 꾸역꾸역 먹으며 나는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삶는 물에 소금을 넉넉히 쳐야 한다는 요령 또한 몰랐던 터라 소스는 넉넉했지만 파스타는 끝없이 심심했다. 

맛있는 파스타를 만드는 첫 관문은 정확한 계량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파스타 1인분은 100g

해가 이미 부엌에는 잘 깃들지 않기 시작하는 오후 두 시쯤, 일을 하다 말고 물을 끓이며 그때 생각을 한다. 낄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면발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던 이십 몇 년 전의 내가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다. 지금은 ‘엄지와 검지로 그리는 동그라미’ 같은 것도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필요 없다. 저울이 정확하지 않은 모든 요령을 살포시 압도한다. 길든 짧든, 표면에 골이 지든 안 지든, 나비 넥타이처럼 생겼든 파스타는 500g 단위로 포장되어 팔리고 100g을 1인분으로 잡는다. 많이 먹고 싶으면 더, 적게 먹고 싶으면 덜 달면 된다. 

말도 안되게 쉽고 간단한 일인데 의외의 걸림돌이 하나 있다. 파스타를 저울에 그냥 올려 달기가 은근히 어렵다. 긴 파스타는 저울의 판에서 미끄러져 내려오지만 그래도 잽싸게 순간을 포착하면 달 수는 있다. 하지만 짧은 파스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각이 잘 안 나온다. 그래서 별도의 그릇이 필요하다. 손에 잡히는 아무 거나 써도 상관이 없지만 물통이나 텀블러처럼 길고 좁은 용기가 어떤 파스타도 안정감 있게 품어 준다. 나는 단백질 보충제를 사면 딸려오는 사은품 물통을 요긴하게 쓴다. 

파스타 면의 품질은 가격대에 비례한다. 면의 품질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딱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정확한 계량이 가능해졌다면 어떤 파스타를 올릴지 고민할 차례이다. 면의 길이나 모양 말인가? 물론 중요하지만 선택하기 전에 그 모두를 아우르는 핵심이 있다. 바로 면의 품질이다. 파스타, 특히 가장 일반적인 스파게티나 마카로니 등은 흔하고 종류가 많은 데다가 가격대도 다양하지만 눈으로는 차이점을 알아 차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냥 싼 걸로 대강 골라와도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파스타는 굉장히 솔직할 지경으로 가격대와 맛이 비례한다. 넘긴다는 질감만 주고 후루룩 사라지는 제품이 있는 반면 소스며 올리브기름 등 모든 부재료의 맛과 질감이 지나간 뒤에 오히려 고소함이 확 살아나며 긴 여운을 남기는 면도 있다. 우리의 주식인 쌀의 맛이 가격대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양의 주식인 밀로 뽑은 파스타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파스타의 가격대가 높다고 해봐야 대체로 500g에 4,000~5,000원대인데다가 백화점에서는 상표별로 돌아가며 할인 판매를 하는 경향이 있으니 실제로는 3,000원대 후반이다. 

물론 그보다 더 비싼 파스타도 얼마든지 있다. 소규모 공방 생산을 표방하는 면인데 밀의 품질도 품질이거니와, 동(銅)으로 만든 틀로 뽑는 옛날 방식임을 강조한다. 의미가 있느냐고? 그렇다고 주장한다. 동으로 만든 틀을 거치면 유형별로 품는 주름이나 골과 별도로 면의 표면 자체가 미세하게 더 거칠거칠해 소스도 훨씬 더 잘 달라붙는다. 같은 밀의 식구이지만 파스타의 재료는 일반 밀보다 좀 더 단단한 듀룸밀의 가루이다. 일반 국수처럼 잘 늘어나지 않을 정도로 밀이 단단해 압출, 즉 틀에 반죽을 밀어 넣어 뽑아내는 방식으로 면을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하는지라 동으로 만든 틀이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인데,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고급 대량생산 면보다 가격이 한 세배쯤 비싸다면? 각자의 선택에 맡긴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면을 삶을 때는 면이 잘 잠길 수 있도록 넉넉한 냄비를 써야 한다. 소금은 물 1L에 계량 숟가락 1큰술을 넣으면 적당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물 1ℓ에 소금은 1큰술

적절한 수준의 면을 계량했다면 물은 이미 냄비에서 끓고 있어야 마땅하다. 파스타 같은 음식을 준비하는 물이라면 전기주전자에 끓이는 게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르다. 파스타를 삶는데 대대로 두 가지의 지침이 딸려 내려왔다. 한데 뭉뚱그리자면 ‘아주 넉넉한, 바닷물처럼 짠 소금물’이다. 그래서 크거나 깊은 냄비를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처럼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면을 삶고 또 삶아본 결과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쪽으로 대세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물이 많아야 파스타의 전분을 적당히 걷어낼 수 있다는 논리였는데, 어차피 전분이 면에 소스가 잘 달라붙도록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있는 냄비를 적당히 써서 적당히 삶아도 괜찮다. 다만 면의 길이에 비해 냄비가 낮을 경우 누그러져 완전히 잠길 때까지는 불 앞에서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냥 놓아 두었다가는 면이 냄비 밖으로 쓰러지거나, 인터넷에 도는 짤방(‘짤림 방지’의 줄임말로 특정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처럼 물에 잠기지 않은 윗부분에 불이 붙어 버릴 수도 있다. 솥처럼 깊지는 않아도 넓은 조림 냄비나 웍 등을 갖췄다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면을 삶을 수 있다. 

파스타는 소금간을 하지 않은 반죽으로 만들기 때문에 삶는 과정에서 간이 함께 들어야 고소함이 한결 도드라진다. ‘바다처럼 짠 물’이라 했는데 매번 끓는 소금물의 간을 볼 수 없는 노릇이니 약간의 계량이 필요하다. 소금의 입자에 따라 계랑 숟가락에 담기는 정도가 다른데, 너무 깊이 들어가다 보면 파스타 삶아 먹기가 귀찮아져 버릴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꽃소금의 경우는 삶는 물 1ℓ마다 1큰술을 더한다. 계량 숟가락이 없다면 이제 한 벌쯤 갖추자. 아, 그러고 보니 파스타 삶기에 딸려오는 지침이 하나 더 있다. ‘포장지의 조리 시간을 확인하라’이다. 내가 옮긴 1,500쪽짜리 이탈리아 요리책 ‘실버 스푼’만 봐도 시판 건면의 파스타 레시피에는 이 한 줄이 꼭 들어간다. 심지어 ‘알덴테(가운데 심이 살짝 단단하게 씹히는 상태)’와 푹 익는 조리 시간을 구분해 병기하는 제품도 있으니 파스타를 물에 넣기 직전 확인하길 권한다. 

겨울의 대표 파스타인 알리오 올리오에 앤초비나 액젓을 더하면 감칠맛이 확 살아난다. 게티이미지뱅크
◇겨울에는 ‘알리오 올리오’와 ‘치킨 누들 스프’

면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면 타이머를 맞추고 소스를 준비할 차례다. 파스타의 세계에서 ‘소스는 면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면의 물기를 빼고 바로 소스에 더해주지 않으면 전분 탓에 붙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소스의 세계도 파스타만큼이나 끝없이 다양하므로 이 시점에서 만들기 시작해도 면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들이 있다. 가장 흔한 예가 ‘알리오 올리오’다. 마늘을 내키는 만큼 집어 밑동을 조금 여유 있게 썰어낸다. 이제 마늘은 안정적으로 설 수 있다. 그렇게 세운 채로 나의 칼솜씨가 허락하는 만큼 최대로 얇게 마늘을 썰어보자. 종잇장 수준까지는 필요 없지만 고깃집에서 내는 것보다는 얇아야 금방 익어 아린 맛이 나지 않는다.

원 없이 마늘을 썰었다면 달구지 않은 팬에 올리고 바닥과 마늘이 잠길 정도로 올리브기름을 붓는다. 소금을 적당히 더한 뒤 아주 약한 불로 서서히 기름을 달궈준다. 생각보다 빨리 마늘이 지글거리며 익기 시작할 것이다. 팬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다면 살짝 들어 한쪽 가장자리로 마늘을 기름과 함께 몰아준다. 마늘은 타기 쉽고, 타면 끈적이며 쓴맛을 내므로 불투명해지기 시작하면 불을 끈다. 앤초비나 액젓을 좀 더해주면 감칠맛이 확 살아나니 참고하자. 대략 5~7분이면 마늘이 다 익을 테니 스파게티를 삶고 있을 경우 적어도 5분은 더 쓸 수 있다. 접시와 체를 꺼내고 면이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집게로 헤쳐준다. 

드디어 면이 다 삶아지면 미리 말끔히 비워둔 싱크대에 파스타 접시를 두고 그 위에 체를 올린 뒤 면을 붓는다. 체에는 면만 남고 접시는 파스타 면수로 따뜻하게 데워진다. 체의 물기를 말끔히 털어 마늘과 올리브기름을 익힌 팬에 붓고 집게로 뒤적여 잘 섞는다. 갓 삶아낸 면이 충분히 뜨거우므로 소스를 굳이 다시 데울 필요가 없다. 접시에 옮겨 담고 후추를 솔솔 뿌린다. 파스타를 자주 해 먹는다면 24개월쯤 숙성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한 덩이 사서 냉장고에 모셔 두었다가 강판으로 푸짐하게 갈아 얹어 먹는다. 

닭고기 육수에 당근, 셀러리를 넣고 파스타 면을 넣으면 따뜻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기까지가 긴 파스타의 겨울 출발점이었다. 짧은 파스타도 긴 파스타와 같은 요령으로 삶아 버무려 먹을 수 있지만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닭을 한 마리 냄비에 삶아 보자. 통닭보다는 닭볶음탕용으로 토막 내 파는 게 다루기도 쉽고 살짝 커서 국물 맛도 나은 데다가 전체 표면적이 넓어 더 빨리 익는다. 마늘과 대파의 푸른 윗동을 적당히 넣고 본격적으로 끓어 오르면 불을 줄인다. 포크로 건드렸을 때 살점이 자연스레 떨어질 때까지 보글보글 끓인 뒤 국물에서 건져낸다. 조금 식혔다가 손으로 헤쳐 뼈만 골라내 둔다. 국물에 짧은 파스타와 당근, 셀러리 등의 채소를 더해 푹 끓인다. 포크로 찔렀을 때 당근과 셀러리가 약간 저항할 정도까지 익었다면 불에서 내린다. 영혼의 자양분까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적당히 따뜻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치킨 누들 수프를 한 솥 끓였다. 닭 한 마리로 국물을 내서 며칠은 먹을 수 있다. 

계란으로 반죽한 파스타 면은 일반 면보다 조리 시간이 짧고 부드럽다. 게티이미지뱅크
조리 시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계란면’

파스타의 세계에도 계란으로 반죽한 면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만들어 바로 먹는 생면이지만 기성품 건면도 살 수 있다. 노른자 지방의 영향으로 반죽이 물로 반죽한 면보다 부드러워 하늘하늘할 정도로 밀어 펴니 조리 시간도 절반이나 그 이하로 짧다. 대체로 일반 건면보다 더 단순하게 맛을 들이는데, 올리브기름보다 녹인 버터 바탕의 소스에 버무린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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