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 칼럼] 중국이 바이러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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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칼럼] 중국이 바이러스는 아니다

입력
2020.01.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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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메르스 때는 없었던 혐오

왜 신종 코로나에선 생겨난 걸까

우리 사회 혐오 일상화 탓 아닐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중국 불매를 의미하는 '노 차이나'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중국, 중국인에 대한 기피심리가 돌연 생겨난 건 아닐 것이다. 글로벌 초강대국으로 급성장한 최근 10여년 사이 그들이 보여 준 태도, 입만 열면 대국(大國)을 말하면서 정작 행동은 전혀 대국답지 않은, 무례와 오만과 협량의 민낯을 접하면서 한국민의 ‘반중’ 감정은 조금씩 싹을 키웠던 것 같다.

사실 사드 파동 당시 중국 정부가 취했던 행패에 가까운 보복 조치들은 금전적 손실을 넘어 잊기 힘든 모욕이었다. 북한이 핵을 터뜨리고 마사일을 쏘아 대는데도 미온적 태도로 일관한 건 핵심 이해당사국으로서 너무나 무책임했다. 여기에 몇몇 인상적 장면들, 예컨대 국내 대학 게시판에 붙은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를 찢어버리는 중국 유학생들의 행태나, 심지어 관광지 곳곳에 중국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 더미들을 보면서, 그들과 별로 엮이고 싶지 않다는 심리는 차곡차곡 쌓이게 됐다.

결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가 방아쇠였다. 표출되지 않았을 뿐 잠복해 있던 중국에 대한 거부감과 기피심리는 전염병 공포와 맞물리는 순간 ‘혐중’으로 번지게 됐다. 물론 일부 식당에 붙은 ‘중국인 출입금지’ 문구나, 참여인원이 60만명에 육박한 ‘중국인 입국금지’ 청와대 청원만 갖고 혐중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중국 관광객이 당분간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은 그저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지극히 정상적 반응이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이 정도 인지상정 수준은 이미 넘어서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퍼지는 출처 불명의 동영상들과 가짜뉴스들을 통해 중국인을 바이러스로, 우한뿐 아니라 중국 전체를 세균 서식처로 여기는 심리가 생겨났음을 솔직히 부인할 수 없다. 어디까지가 기피이고 어디부터 혐오인지, 반중과 혐중의 경계선이 어디인지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중국 동포까지 접촉하지 않으려 하고, 이들이 거주하는 서울 대림동 일대가 고립된 섬처럼 되어버린 현실은 분명 혐오에 가깝다고 하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중국의 모습은 미국을 위협하는 G2도, 최첨단 산업까지 휩쓰는 굴기의 나라도 아니다. 마스크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방역 후진국일 뿐이다. 아무리 중국에 대해 쌓인 감정이 있다 해도, 또 전염 차단이 최우선 과제라 해도, 사망의 공포에 떠는 중국인들을 향해, 각국이 전세기를 띄워 자국민들만 데리고 나가는 장면을 무기력하게 봐야 하는 중국 정부를 향해, ‘못 오게 해야 한다’ ‘내쫓아야 한다’는 식의 감정을 표출하는 건 차마 해선 안될 일이다. 어차피 정치경제적으로 중국과 결별은 불가능하고 이 대란이 끝나면 좋든 싫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텐데, 행여 지금 주는 상처가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 혐중 정서를 드러내는 건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반 국민들은 그렇다 쳐도 제 1야당이 중국인 입국금지와 국내 체류 중국인 관광객 강제 송환을 외치고, 신종 코로나 대신 굳이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는 건 잘못된 태도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 비판을 위한 재료라고 해도, 그 무엇보다 국민 안전이 중요하다 해도, 국정운영 경험이 없다면 모를까 집권을 해 봤고 재집권을 향해 절치부심한다는 자유한국당이 현 단계에서 중국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를 공격할 소재는 차고 넘칠 텐데, 국민정서가 어떻든 수권정당이 이래선 안 된다고 본다. 어렵고 힘들 때 적도 되고 친구도 되는 건 개인뿐 아니라 국가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 겪는 전염병은 아니다. 사스 메르스를 겪었고 그 중 사스는 중국발이었다. 그때도 공포는 컸지만 적어도 혐오는 없었다. 없던 혐오가 유독 지금 발현된 건, 중국이나 바이러스 탓 못지않게 어쩌면 혐오가 일상이 되어 버린 우리 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념이든 정파든 세대든 계층이든 젠더든, 끊임없이 미워하고 공격할 대상을 찾는 일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가 결국 또 하나의 괴물 ‘혐중’을 만든 것은 아닐까.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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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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