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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직권남용 범위… ‘적폐 청산·유재수 사건’ 영향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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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직권남용 범위… ‘적폐 청산·유재수 사건’ 영향 불가피

입력
2020.01.30 18:45
수정
2020.01.30 19:3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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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등‘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

실무자의 행위 결과가 법규 내에 있다면 처벌 못해

‘의무 없는 일’ 등 해석에 혼란 있는 용어 명확히

MB·박근혜·조국 등 변론 근거로 제시할 듯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 상고심에서 직권남용의 죄를 엄격히 판단함에 따라 마찬가지 혐의가 적용된 이른바 ‘적폐 청산 사건’ 재판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 및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법농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유재수 감찰무마),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환경부 블랙리스트) 등의 재판이 모두 영향권 내에 있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하지만 조문상 '직권'이나 '남용', '의무 없는 일' 등의 단어 해석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제기돼 왔고 하급심에서도 엇갈린 판단이 잇따라 혼선이 빚어진 게 사실이다.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런 혼란상을 정리했다는 의미가 크다.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은 “직권남용의 결과로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이 이뤄진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상부의 부적절한 지시로 실무자가 압박을 느끼고 당초 계획과 다른 행위를 했다고 할지라도 실무자의 행위가 법령이나 규정 내에 있는 것이라면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직권남용 행위가 실무자의 행위를 변화시켰다고 할지라도 실무자의 행위가 법령ㆍ규정 위반일 때에만 죄가 된다는 의미다.

대법원의 새로운 판례는 당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된 ‘사법농단’ 사건에 적용될 수 있다. 검찰은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 47개의 범죄사실로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하면서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재판부에 부적절한 압력을 가한 행위 외에도 법원행정처의 지시나 의견 조회, 내부 보고서 작성까지 문제 삼았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영향을 미칠 대목은 ‘의무 없는 일’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다.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등 요청에 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만큼,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는 일부에서 무죄를 다툴 수 있다. 보고서 작성 등 행위에 대해 ‘업무협조나 의견 교환 차원’이라고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검찰도 대법원 선고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 내용도 법관으로 하여금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보고 등을 하게 했다는 취지여서 오늘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도 “새로운 기준이 생긴 것인 만큼 대법원 판결문을 분석하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도 일부 추가 심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파기환송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공범으로 묶여있다. 다만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에 강제 모금을 한 혐의와 관련해선 주된 쟁점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대법원이 문제 삼은 지점은 직권남용 상대방이 공무원 등인 경우다. 기업 등 사인을 상대로 한 직권남용에 대해선 오히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권에 대응해 따라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그에게 어떠한 행위를 하게 했다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할 수 있다”고 유죄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에서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피고인 측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변론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감찰 중단 등 결정이 정무적 판단의 범위 내에 있을 뿐, 그 자체로 법령 위반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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