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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아는 엄마 기자] 신종플루와 신종 코로나

입력
2020.02.01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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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겨울, 퇴근길 내내 뒤죽박죽 된 머릿속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들쳐 업고 나왔다.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간밤에 열이 39도까지 오르는 걸 보고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출근해야 했던 그 날은 말 그대로 하루가 1년 같았다.

아이와 찾아간 곳은 신종플루 거점병원.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인플루엔자A H1N1 대유행을 선언한 그 해 6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이 온통 신종플루 열병을 앓았다. 문제는 발열만으로는 신종플루인지 보통 감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뒤죽박죽 된 머릿속에서 이럴 땐 과잉대응이 최선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간신히 끄집어낸 덕에 아이에게 발열이 시작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신종플루 거점병원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선택을 요구했다. 비용을 들여 신종플루 여부를 알아보는 검사를 할지 말지, 할 거라면 신속검사와 확진검사 중 어떤 방법으로 할지, 직접 알려주면 더없이 좋으련만 전문가는 엄마인 내게 결정하라 재촉했다. 신속검사는 상대적으로 싸고 하루 만에 결과를 알 수 있으나 당시 정확도가 50% 정도에 머물렀다. 확진검사는 비싼 데다 사흘이나 걸리지만 훨씬 정확했다. 그때도 과잉대응을 기준 삼아 확진검사를 선택했고, 사흘을 뒤죽박죽인 채로 살았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받았던 검사 결과는 음성. 온 가족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이의 열도 거짓말처럼 내렸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때문에 엄마들은 또다시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더 주문해야 하나, 장을 봐야 하는데 마트에 가도 괜찮나, 아이가 학원에 갈 때도 마스크를 씌워 보내야 하나, 방학캠프나 수영장은 보내도 되나, 예약해 놓은 여행은 취소할까 말까 매일같이 고민하며 불안해한다.

선택의 기로에 선 엄마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부와 전문가들의 엇박자다. 신종플루 유행 당시 보건당국은 신종플루 의심 환자에게 신속검사나 확진검사를 하지 말고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라고 의료진에게 권고했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신속검사를 해보라고 추천하는 병원도 있었고, 해열제만 처방해주고 지켜보자는 의사도 있었다. 거점병원조차 환자 보호자에게 검사 여부를 선택하라 했으니 권고는 그야말로 무색했다.

이번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 수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를 넘어섰다는 중국의 발표가 나온 지난 29일 보건당국은 신종 코로나의 ‘무증상 감염’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신종 코로나에 감염은 됐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같은 날 WHO의 발표와 배치됐다. 무증상 감염이 나타나면 증상이 나타난 사람을 중심으로 관리가 이뤄지는 방역 체계를 바꿔야 한다. 그만큼 민감한 부분인데도 몇 시간 차이로 전혀 다른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학부모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지난 28일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대책에 대해서도 정부와 서울시가 엇박자를 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오전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공문을 보내 개학을 연기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국무총리실은 개학 연기는 없다고 뒤집었다. 정책 책임자들이 오락가락하고 나니 어떤 학교는 개학을 했고, 어떤 학교는 연기했다. 엄마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2차 감염이다. 감염된 사람이 바이러스를 전파해 중국에 다녀온 적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2차 감염이 확산한다면 우리나라 어디도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초기엔 “제한된 범위 내의 사람 간”에 한해 2차 감염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던 보건당국은 지난 29일 2차 감염 가능성에 대해 “늘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 동네는 괜찮다고 봐도 될지,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질 않던 와중에 결국 일본과 독일에 이어 국내에서도 2차 감염 사례는 나오고 말았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몰고 온 혼돈의 상황 중에 늘 속 시원한 대책이나 해답이 나오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다. 다만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책임자들이 이제부터라도 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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