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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본다, 고전]통통 튀는 시적 사유가 가득한 철학책

입력
2020.01.31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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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격주 금요일 ‘한국일보’에 글을 씁니다 

 <24>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20세기 문제적 이론가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 한국일보 자료사진
20세기 문제적 이론가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가 철학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은 철학이 시의 별자리 아래에 서있을 때다. 반복해 읽어도 도무지 모르는 이야기나, 논지를 꼬아 쓴 난해한 책 앞에서는 하품이 나온다. 그러나 시적 사유가 번뜩이는 문장, 상상력이 활개치는 책이라면 몇 번이고 읽고 싶다. 발터 벤야민(1892-1940)의 ‘일방통행로’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찾아 읽는 책이다. 도로교통법에 관한 책인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읽어보면 탁월한 제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고로 천재 작가의 사유란 얽매이지 않고, 죽죽 앞으로 나아가는 법!

‘일방통행로’를 읽을 때면 오토바이를 타고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좁은 도로나 불안정한 곳―바다 위, 지붕 위, 땅속 깊은 곳―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기분이다. ‘달린다’고 표현한 이유는 벤야민의 모든 문장이 ‘도화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화선, 터지기 위해 달리는 불꽃의 도로! 타 들어가는 마음, 사건의 ‘직전’, 현장의 맨 앞, 그곳에서 최초로 들리는 목소리 같다.

때문에 모든 언술엔 긴장이 도사린다. 무엇을 이야기할지, 어디에서 시작해 어느 곳에서 끝날지 알 수 없다. 각 챕터의 제목은 글의 내용을 전복시키거나 비켜간다. 마치 ‘우스꽝스럽게 달린 뿔처럼’, 제목이 달려있다. 벤야민은 제목으로 농담을 하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맞추는 직물적 단계.”(56쪽)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글의 제목은 ‘계단주의!’다. 산문을 쓰기 위한 세 단계를 논하면서, ‘계단주의!’라니?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있을까?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99쪽)

한 줄이 전문인, 이 글의 제목은 ‘아크등’이다.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빛으로 켜있는 방. 그는 대상을 ‘보는(아는)’ 유일한 외눈박이가 된다는 걸까?

‘작가의 기술에 관한 13개의 테제’와 ‘속물들에게 맞서기 위한 13개의 테제’가 쓰인 글의 제목은 ‘벽보 부착 금지!’다. 혐오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느 글의 제목은 ‘장갑’이다. 왜냐고? 그의 철학이 시의 별자리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시의 별자리에서 ‘왜’라고 묻는 건 금지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지음ㆍ조형준 옮김

새물결 발행ㆍ179쪽ㆍ1만5,000원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을 보는 눈’이다. 사실, 그게 다다. 벤야민에겐 ‘다른 눈’이 있었다. 중얼거림과 선언, 비밀과 발설을 넘나드는 발화 방식은 그 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책을 읽다 보면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를 비롯해 많은 대가들이 벤야민의 글쓰기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은 자유롭고 함축적이며 비약과 도약에 능하다. 글들은 편편이 반짝이는데, 어둠 속에서 은둔하는 별처럼 반짝인다. 대체로 장황하지 않고 짧다(반짝임은 원래 길 수가 없다). 빛나는가 싶다가도 훌쩍, 다른 곳으로 넘어가버린다.

엘피판으로 음악을 들으면 음악에 그 시대의 정서와 문화가 실려 ‘같이’ 도착하는 듯 느껴지는데, 그의 글에도 그런 맛이 있다. 암울한 시대 상, 내면의 두려움(꿈에 대한 글이 많다), 시적 몽상, 이야기를 꺼낼 때의 열기, 천재성, 향수(어린 시절), 멜랑콜리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종종 의기소침해지거나 극도로 내밀해지는데, 그럴 땐 시인의 얼굴이 보인다. “한창 일하던 중에 일출을 맞이한 사람은 정오가 되면 스스로 자기 머리에 왕관을 얹은 것 같은 기분이 된다”고 할 때. “우표는 큰 나라(大國)들이 아이 방에 넣어두는 명함”이라고 할 때. 섬세한 시선에서 슬픔의 심지를 발견하게 될 때. 그럴 때 그의 글은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못 견디게’ 좋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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